‘해어화(解語花)’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뜻을 가졌는데요. 우리 역사상 이에 비유되는 분이 계시지요. 바로 조선의 기녀 ‘황진이’입니다. 황진이를 모르는 분은 없으실 텐데요. 시대의 전유물인 문학과 TV 드라마, 영화, 유행가에 이르기까지 황진이라는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리메이크되거나 다른 해석으로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그야말로 ‘황진이’는 시대를 거슬러 언제나 ‘핫(hot)’한 인물입니다. 세상을 떠난 지 무려 5백년이 훨씬 지났어도 여전히 사람들을 매 료시키는 마력을 지닌 조선 최고의 명기(名妓), 황진이!<1520(?)~1560(?)>. …… (중략)
양반들한테 술을 팔고 재주를 팔았지만, 결코 영혼마저 내주지 않았고 되려 허례허식 투성이 양반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했던 예인 황진이. 명석한 두뇌와 재색을 겸비한 그녀의 요염과 발칙함은 당시 양반들에게 있어서 거부할 수 없는 ‘로망’이자 ‘도발’이었다지요. 당시 양반들은 황진이와 술잔을 기울며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게 웬만한 벼슬자리를 얻은 것보다도 더 큰 자랑거리였다 전해지기도 합니다. 대체 황진이에게는 어떤 남다른 매력이 있었기에 이토록 당대는 물론이거니와 시대를 거슬러서도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밤은 조선 중기 만인의 로망이었던 명기(名妓) 황진이님을 이 자리에 소환하여, 기녀로서의 일생과 그녀를 아낌없이 사랑했던 다섯 남자들과의 아찔한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인터뷰어 소문에 의하면 30년 동안 벽만 보고 수양하던 반부처 지족선사도 황진이님께서 파계시켰다고요?
황진이 아직 세상물정 모르고 제 잘난 맛에 나대던 때의 이야기 인데,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지못미 지족선사’지요.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스님한테 죄스럽고,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입니다. 세상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진심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아니되는 것을….
인터뷰어 지족선사와의 일화, 지금 들러주실 수 있을까요?
황진이 고해성사 받는 샘치고 후대 양반님들께 이야기하는 건 어렵지 않지요. 허나, 제가 많이 부끄럽소. 당시 저는 송도 제일의 기녀로 소문이 자자했고, 따라서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제 위에 사람 있는 줄도 모르고 제 잘 난 맛에 취해 있었지요. 나 좋다는 사람은 매력이 없어보였고, 나한테 관심이 없으면 어떻게든 그 사람의 관심을 끌어내게 굴복시키고픈 아주 몹쓸 마음이 마음 한켠에 자리해 있었어요. 그 희생양이 바로 지족선사였어요. 일팔 청춘이었으니 젊음과 아름다움, 게다가 총명함까지 두루 갖춰 세상 무서울 게 있었겠어요? 당연히 없었지요. 저는 평소 거침이 없고 도발적인데다가 호기심 천국이어서 뭐든 결심하면 당장 실행해 옮기는 스타일이었어요.
동료이자 절친인 개순이와 내기를 했어요. 당시 송도에서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고 있던 선승 지족선사가 내 유혹에 넘어오는지, 내가 망신만 당하고 쫓겨날지. 엽전 세냥 걸고 한 내기에 지족선사의 30년 수양이 그야말로 말짱 도루묵이 돼버린 것이지요. 송도 지족암에 30년 동안 면벽참선, 즉 벽만 보고 도를 닦는 스님 한 분이 계시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 많이 듣고 있었지요. 30년 동 안 벽만 보고 참선을 행하시다니…. 갈수록 그 분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졌어요.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살아있는 부처로 통할까, 제아무리 살아있는 부처도 이 미색의 아름다운 진이를 보면 마음이 흔들 리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고요. 마침 개순이와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기까지 하게 되었지요. 저는 그의 인간 됨됨이와 수양 정도를 시험해보기로 했어요. 천하에 지족선사일지라도 내 유혹에 넘어오면 아직 수양이 덜 되었다는 증거일 테니까. 물론 스님 이 기방의 기생을 찾아올 리 없으니까 내가 기꺼이 제물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었죠.
인터뷰어 오호라, 갈수록 이야기가 재미있어집니다. 그래서요.
황진이 어느 날, 단정한 차림새로 스님을 뵈려 지족암에 찾아가 정중히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로서 수도하기를 청하였는데……(중략)
--<홍지화의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집』, nobook, 2021> 중 황진이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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