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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이 호러의 전략

탁월한 전반부와 부진한 후반부, 공포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by 헤이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일본의 괴기소설들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괴담을 다룬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소설들과 마쓰다 신조의 죽은 자의 녹취록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조금 뒤늦게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목을 보고 이건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괴담을 다뤘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 부분에 끌렸기 때문에 다른 정보는 하나도 찾아보지 않은 채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궁금하긴 했으나 기대감이 크지는 않았던 이 영화는, 적어도 공포영화로서 괄목할 만한 작품이었네요.


한 가지 미리 전제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저는 원작이 있음을 모르고 영화를 봤으며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기록해두는 용도의 리뷰조차 원작의 존재를 모른 채 썼고, 거기에는 이야기의 설정 중 상당 부분이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원작과의 차이점을 정리해놓은 나무위키 문서를 읽으면서 대강 원작과 영화의 설정을 이해했죠. 원작에 대한 정보가 영화 속의 사건들을 잘 정리해줌에도 불구하고, 이번 리뷰에서 줄거리 부분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바깥에서 얻어낸 정보가 영화 내의 정합성을 담보해준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서사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영화 속에서 제시된 정보만으로는 관객이 세계관 전체를 온전히 꿰뚫기가 어렵다고 여겨져요. 조금 더 근본적인 두 번째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이번 리뷰의 목적이 이 영화의 이야기를 분석하는 데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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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사람에 따라 워낙 편차가 큰지라 이를 일반화해서 말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가 올해 본 영화들 중 가장 무서웠습니다. 같이 영화를 본 지인도 굉장히 무서워했고, 관람객 평들을 훑어봤을 때 비슷하게 느끼신 분들이 없지는 않은 것 같고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 영화가 전혀 공포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죠. 영화를 다 보고 저의 생각이 가장 먼저 미쳤던 지점은 '왜 이 영화가 무서웠을까'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었구요. 만약 공포영화로서 이 작품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이번 리뷰는 공감하기 무척 힘들 수도 있겠다는 말을 미리 깔아두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봐야겠네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전략이 완전히 다른 작품입니다. 전반부에서 이 영화는 <곤지암>과 유사한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캐릭터와 서사를 거의 포기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대폭 축소하고 공포의 효과에만 집중하는 것이죠. 저는 <곤지암>을 거의 까무러칠 정도로 무섭게 봤었고, 지금도 <곤지암>만큼 접근 방식이 영리한 국내 호러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유사성 논란을 빚은 캐나다 영화 <그레이브 인카운터>는 제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한 편의 '작품'으로 공포영화를 바라볼 때 완성도에 대한 상한선을 분명히 긋는 방법론이기는 합니다. 정말 뛰어난 공포영화들은 캐릭터와 서사조차 독창적이면서 무시무시하게 만들 줄 알고, 잔재주로 관객을 놀래기보다 이야기 자체를 섬뜩하고 소름 끼치게 만드는 것은 뛰어난 드라마 장르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보다 아득하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러는 장르 중에서도 더 많이 규격화되어 있고 그만큼 참신하기 어려우며 게다가 관객의 기대치도 워낙 높기 때문에, 아예 이야기를 버리고 효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분명 현명한 접근법일 수 있습니다. 캐릭터의 설정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진부하고 심지어 잔재주조차 통하지 않는 공포영화들을 얼마나 숱하게 봐왔는지를 떠올려보면, 저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수긍은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 불가사의 매거진'에 실릴 특집을 취재하던 편집장 사야마가 실종되자 후배 기자인 오자와와 사야마의 지인인 치히로가 남겨진 자료들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영상들을 제보받으면서 대신 기사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영화는 이 간단한 캐릭터 세팅만을 해두고 이들이 보는 비디오들을 있는 그대로 재생시켜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두 주인공은 자신들이 보는 비디오의 맥락을 설명하고 때때로 포착된 사건들 사이의 연관성을 추론하면서 영화가 '괴담 모음 유튜브 영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고만 있죠. 여기에 캐릭터로서 두 인물의 깊고 복합적인 욕망과 동기 따위는 없습니다. 마감기한 내에 특집 기사를 완성한다는 행동 상의 목적만으로도 관객은 비디오들이 끊임없이 재생되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바로 이 형식을 통해 영화는 순수하게 공포스러워집니다.


괴기현상을 담은 영상들을 직접 보여주는 형식은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에서 심령의 주체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즉, 마사루사마 또는 산 자체가 사람들을 부르는 것과 아키코와 그 엄마가 영상과 그림을 통해 퍼져가며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죠. 이와 관련된 여러 현상들을 일반적인 서사 안에서 나열하다가는 영화가 난잡해질 위험이 있지만 각지에서 들어온 제보 영상의 형식을 빌리면 이것이 반대로 자연스러워집니다. 또한 초반부터 관객의 이목을 확 잡아끄는 동시에 워낙 호흡이 짧은 영상들이 연달아 제시되다 보니 집중도 수월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고요. 후반부에서 문제점으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회수에 대한 걱정 없이 떡밥만 신나게 뿌려놓으니 초반부는 미스터리로서도 꽤나 흥미진진합니다.


비디오마다 공포스러운 정도에 편차를 둬서 완급 조절도 좋습니다. 초반부는 특히 리듬감을 다루는 스킬이 돋보이더군요. 실종되었던 어린 소녀가 눈에 구멍이 뚫린 채 목격되었다는 것을 인터뷰로만 소개하더니 수련회에서 아이들이 "산에 오지 않을래요..." 하는 목소리를 듣는 섬뜩한 영상을 보여주고, 일종의 쉼표처럼 바이크 투어를 떠난 남성이 사당에서 귀신에 사로잡히는 짧은 영상을 거쳐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섭다고 할 수 있는 니코 라이브 클립에까지 이르죠. 흉가 체험 스트리머의 실종 사건을 라이브로 담은 이 클립은 영화에 등장하는 영상들 중 가장 길면서 분위기도 가장 전형적인 호러에 가깝게 잡혀 있는 데다 마지막에 이르면 사진 속 눈이 움직이거나 목매단 귀신이 나타나는 등 확실한 구두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초반부에서 이 영화는 엑셀과 브레이크를 노련하게 밟다가 전력질주까지 제대로 해내는 셈입니다. 이후로도 여고생의 투신자살이 담긴 긴 호흡의 홈비디오나 귀신에 시달리는 대학생이 직접 찍은 짧은 영상들처럼 영화는 괴기현상의 구성과 배치에서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형식의 가장 큰 강점은 타이밍에 있는 듯 느껴집니다. 아무리 잘 만든 공포영화라도 결국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극도로 긴장감을 조인 뒤에 별일 없이 확 풀어버리거나, 이완 직후에 엇박으로 터뜨리면서 더 놀라게 만드는 등 공포 효과에 있어 상당히 고착화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점프 스케어에 의존하지 않는 영화도 결국 관객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데에는 이 타이밍에 대한 감각을 활용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영리하게도 오자와나 치히로의 리액션을 아예 소거하고 순수하게 푸티지만 보여주기 때문에 기존의 공포영화를 통해 체득한 리듬감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영상 바깥에서 음악이나 편집 등으로 속된 말로 '쪼으는' 것도 일절 없기 때문에 더더욱 관객은 속수무책이 되죠. 간단히 말하면 지금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 점프 스케어가 있을지 없을지, 귀신이 실제로 등장할지 아닐지 등등이 조금도 가늠되지 않아 매 순간이 지뢰밭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나중에 집에서 다시 보면 아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효과에 압도당하며 봤던 어떤 공포영화도 추후에 다시 봤을 때 처음과 같은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건 이 영화만의 약점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취향과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이 영화에는 사실상 점프 스케어라고 부를 만큼 '쎈' 포인트가 없습니다. 니코 라이브 클립에서 사진 속 눈이 움직이거나 후경에 귀신이 있는 것도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정도지 깜짝 놀랄 요소는 아닙니다. 저는 대학생인 메구로 유우지가 찍은 두 개의 영상도 정말 무섭게 봤는데(목이 뒤로 꺾인 남자아이 귀신과 베란다에 가만히 서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 귀신이 각각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 영상들도 남자아이가 몸을 뒤로 돌려 뒤집힌 얼굴로 유우지를 쳐다보거나 여자가 손을 위로 뻗어 올리는 동작을 하는 찰나, 즉 분위기가 고조되려는 찰나 끊어지죠. 저는 딱 이 정도로 바싹 조이는 공포가 가장 취향에 맞는 것 같습니다. 조이고 조인 끝에 확실히 터뜨리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테고 이를 기가 막히게 해내는 작품들도 여럿 생각나지만 때로는 너무 지치기도 하거든요. <기담>은 효과와 이야기 모두가 정말 훌륭한 영화지만 3부에 이를 때쯤 스트레스가 치솟아서 영화에 당하는 걸 단념하고 한쪽 귀를 막으면서 봤던 게 기억나네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놀램으로써 관객을 무섭게 만들려는 욕심이 없어서 무척 호감이 가는 호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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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영리하게 시작했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정반대 노선을 취하면서 기울기 시작합니다. 오자와를 공격하는 눈의 조악한 CG나 무척 맥없이 느껴지는 크리처 디자인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테고, 반전과 관련해 다소 부실한 앞부분의 설정들을 비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저에게 지엽적인 것으로 느껴져요. 조금 더 넓은 차원에서 아쉬운 점을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는 캐릭터 드라마가 부실할 바에 차라리 소거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선택인지, 후반부에 부실한 캐릭터 드라마를 집어넣음으로써 역으로 한 번 더 증명하고 맙니다. 치히로를 두고 독단적으로 취재에 열을 올리던 오자와는 혼자 일가족이 실종된 집에 방문하고 밤늦게까지 지하실에서 일을 하다가 결국 귀신에 사로잡힙니다. 치히로가 그를 구해주고, 때마침 실종되었던 사야마가 사실은 아내와 함께 은닉했음을 알게 되어 그를 찾아가죠. 그리고 사야마가 죽기 전 건네준 USB를 통해 치히로가 정체불명의 바위를 섬기는 종교에 한때 빠져 있었으며 갓난아기에 불과한 아들이 살해당한 과거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바위를 부숴야 모든 참극이 멈출 거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긴키 지방의 연못을 찾아가는데, 여기서 치히로가 아들을 되찾기 위해 오자와를 제물로 바치려 했음이 밝혀집니다.


이 모든 정보가 후반부에 몰려 있습니다. 이 스토리라인은 사람에 따라 매력적으로 볼 수도 있고 약간 짜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저는 아주 흔하긴 해도 못 봐줄 만한 전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플롯과 리듬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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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야마가 스스로 잠적했다는 사실이 갑작스럽게 드러나는 부분부터 뭔가 이상했습니다. 최소한의 전조나 이 사실을 캐내려는 노력도 없이, 사야마의 도주를 도와줬다는 사람을 찾았다면서 그를 찾아가는 장면이 시작되죠. 돌이켜보면 이 바로 앞 장면은 치히로가 오자와를 구해주고 안정시키기 위해 자기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오자와는 치히로의 아들 사진을 봅니다. 다시 말해 비디오 자료들과 오자와의 빙의를 이용해 공포감을 최대한 유발한 이후 영화는 드라마 파트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문제는 여기가 이미 러닝타임의 절반을 넘어선 지점이라는 거죠. 이 영화는 공포 효과를 위해 서사를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영화를 갈무리하기 위해 뒤늦게 과제를 시작하는 듯 보입니다. 이것은 앞부분의 템포를 조금 깎아먹더라도 캐릭터의 전사나 비밀을 하나씩 흘리는 선택지 1번과 아예 원작의 줄거리를 포기하는 선택지 2번(예를 들면 오자와가 먼저 귀신에게 당해 퇴장하고 치히로가 사태를 해결하거나 혹은 똑같이 당하는 식의 전개가 가능하겠죠)이 아닌 제3의 선택지입니다.


그러니 아들 사진이 제시되는 순간도, 사야마의 야반도주가 밝혀지는 것도, 사야마가 준 USB에서 '하늘의 바위문' 영상과 그 속의 치히로를 발견하는 것도 모두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애초에 이때까지 드라마랄 게 없었으니까요. 또 이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는 장면이 아니라 반전을 위해 떡밥을 뿌리는 데 골몰해 있음이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영화를 다 보고 복기해보면 기능적이라고 평가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런 장면들이 자기 기능이라도 잘 수행했느냐 하면 그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 모두 지나치게 늦은 타이밍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단서들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킬 여유 없이 영화는 어느새 결말에 다다라 있죠.


따지고 보면 이 영화의 결말은 분명 섬뜩해야 맞습니다. 뒤틀린 욕망으로 사람을 제물로 삼고 그 대가로 죽은 아이와 재회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아닌 아기를 위해 치히로가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이사이를 영상으로 타고 다니게 되는 것은 이야기적으로 힘이 없는 설정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야기를 곱씹으며 몸서리치게 되는 관객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집니다. 분명 엔딩에는 임팩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점점 기묘하게 뒤틀리는 치히로의 얼굴과 아기의 새까만 손, 즉 이미지의 힘이지 이야기의 힘은 아닙니다. 방금까지 논의했던 대로 이 영화의 서사는 정해진 노선을 따라 관성적이고 급하게만 전개되어 보는 사람에게 하나의 이야기로서 다가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3의 선택지를 고른 것에 대한 저의 평가는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전체의 완결성을 위해서라면 다른 두 옵션 중 하나를 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후반부의 리듬을 어그러뜨림으로써 전반부를 압도적으로 즐길 만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부정하기가 힘들군요. 게다가 후반부가 부실하고 위태위태하기는 해도 완전히 무너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전반부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섬뜩한 순간들이 몇 군데 있었고, 결말도 이 정도면 깔끔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전반부에 대한 제 찬사는, 어쩌면 영화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모든 요소를 후반부에 몰아둔 선택까지 포함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후반부가 안 좋았기 때문에 전반부를 즐길 수 있었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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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운 동시에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도 높은 공포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야기만으로 소름이 오싹 끼치게 만드는 작품은 영화사를 통틀어서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가 않네요. 거의 찾아 읽지 않았던 호러 소설들을 근래에 조금씩 챙겨보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입니다. 효과 없이 순수하게 무서운 이야기는 결국 소설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고 보면 살면서 가장 무섭게 봤던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라 인터넷에 '공포썰'을 검색하고 읽었던 글들에서 주로 발견됐던 것 같기도 합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영화로서 소설은 할 수 없는 것을 어찌 됐든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겠네요. '효과'는 당연히 공포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요소이고, 그걸 이만큼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참신하게까지 해내는 작품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그냥 잘 만든 공포영화의 편집과 음악을 그대로 갖다 베끼기만 해도 최소한 한 장면 정도는 제대로 무섭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반 농담입니다), 그조차 못하는 영화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심지어 <컨저링>에서 엄청난 테크닉을 과시했던 제임스 완조차도 <말리그넌트>에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실패했더랬죠.


사실 시라이시 코지는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 없던 감독이고, 전작들의 평을 찾아보면 온전히 지지를 받는 감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사다코 대 카야코>는 유튜버 거의없다님의 걸작선 영상으로만 수 십 번을 봤었는데, 이 영화가 <사다코 대 카야코>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었음을 미리 알았다면 아예 호기심을 접어버렸을 것 같기도 하고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를 인상적으로 봤다고 해서 이 감독의 전작들을 열성적으로 찾아볼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신작 소식이 들려오면 관심은 갈 듯합니다. 당장 올해 4월에 개봉했던 <사유리>가 최근에 왓챠에 들어온 걸 오늘 알게 됐는데, 이 리뷰를 업로드한 후 이 영화부터 챙겨보고 싶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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