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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2학기>, 선택지가 없이 일터로 나간 아이들

견뎌도, 견디지 못해도, 견디지 않아도 내일이 어두워 보인다면

by 헤이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란희 감독은 노동자에 초점을 맞춰 그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나 궁핍한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지만 결코 얄팍한 선악의 대립 구도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휴가>를 보면서 제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놀랐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냉기,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아?'라는 냉정한 질문이었습니다. <3학년 2학기>는 상대적으로 전형화된 주제들을 건드리고는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노동 자체에 대한 피로감 섞인 질문을 던진다는 인상이 들면서 마음이 축 가라앉게 됩니다. 저한테 이 영화가 흥미롭게 다가왔던 지점은 아직 성인도 채 되지 않은 학생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평범하게 묘사된 M&H엔지니어링 내부의 풍경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실습생들의 사연과 선택이었습니다.


짧게 이란희 감독의 두 장편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들을 언급해보고 싶군요. <3학년 2학기>에 드러난 조금 더 날카로운 비판을 제외하면, 제가 느끼기에 이란희 감독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동자의 순환론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 기업의 생태인 것 같습니다. <휴가>에서 우진이 처음 온 직원들에게 똑같은 말로 업무를 가르치고 똑같이 생략한 설명 때문에 똑같은 질문을 받는 것, 젊은 근로자들이 똑같은 건너편 편의점에서 똑같이 컵라면을 먹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풍경이 이 작품에도 있습니다. 그건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짐을 올리는 작업에 놓여 있는 듯 보이네요. 첫 출근 날 첫 작업을 하면서 창우는 자기 옆에 올라오는 지게차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 지게차를 운전하는 앳된 직원을 내려다봅니다. 아마 그도 갓 실습생 딱지를 뗀 사회 초년생이겠죠. 마지막 장면에서 창우는 지게차로 상자들을 위층에 올리는데, 이때 창우에게 손으로 안내 신호를 보내는 실습생의 단독샷이 하나 삽입됩니다. 이러한 순환론은 두 가지 차원에서 모두 작동하는 듯합니다. 하나는 노동자들을 조립라인처럼 계속 순환시키면서 굴러가는 기업의 메커니즘. 여기에는 노동자를 부품으로 취급하는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깔려 있을 겁니다. 또 하나는 기업의 논리와 요구를 스스로 체화해 부품으로서 계속 복무하는 노동자의 심리적 메커니즘입니다. <휴가>와 <3학년 2학기> 모두에서 후자가 전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은 제가 이란희 감독의 사회학을 신뢰하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작법 측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란희 감독이 주인공들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요령 없음'이라는 말로 소개할 수 있을 <휴가>의 재복은 실제로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다른 영화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독창적인 캐릭터입니다. <3학년 2학기>의 창우 역시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매우 답답하지만 또 그만큼 현실적인 인물이죠.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설정된 캐릭터들의 성격이 그가 마지막에 내리는 선택과 밀접하게 결부되면서 드라마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영화를 한 단계 밀어 올린다는 사실입니다. 재복이 딸들을 두고 천막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창우가 회사와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맺는 것은 모두 결함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들의 성격 때문에 이루어진 결정입니다.


상당히 구체적인 주제에 고도로 집중했던 <휴가>와 비교했을 때 <3학년 2학기>에는 핵심을 덜어내고도 확장적으로 논의해볼 만한 요소들이 다방면에 흩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처음 출근하는 쇼트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이 프레임아웃 한 이후에도 뒤따라 오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커스까지 이동해가며 촬영합니다. 학력과 노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영화는 관객이 계속 의식하게끔 만듭니다. 창우의 둘째 동생 영우는 공부에 몰두하면서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는 영리하게도 이 상황을 갈등의 요인으로 삼지 않고 저류에만 깔아 둠으로써 불필요한 멜로드라마에는 곁눈질하지 않는 한편 서브텍스트는 풍부하게 만듭니다. 노동 시장에서의 성별 문제도 있습니다. 우재는 다혜가 총무과에서 일한다는, 다시 말해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지적하고 창우의 엄마는 "야, 어떤 데가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냐?"라고 말합니다. 학교와 기업의 협력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주제는 소재 측면에서는 중요할 수 있지만 영화가 그 자체로 몰두해서 다루는 주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3학년 2학기>는 상기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이 <3학년 2학기>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증진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들이 논의를 확장시키기 위한 유의미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캐릭터 드라마 속에 과하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지점들은 이 영화의 노동 세계를 구성하는 전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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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우는 우유부단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가치를 믿지 못하며 스스로 선택을 내리지 못하죠. 도입부의 상담에서 담임은 실습이 끝나고 일을 잘해서 회사가 채용해주면 경인공전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직전에 자신의 내신 성적으로도 채용이 가능할지 물었던 창우는 "저를 좋게 봐줄까요?"라고 또 한 번 질문합니다. 상담이 끝나고 나오면서도 친구에게 먼저 "너 거기 갈 거야?"라고 묻고, 집에서도 "엄마, 나 거기 가?"라고 묻습니다. 영화의 시작점에서, 창우는 스스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몰리고("그러다 실습 못하고 졸업하면?", "중견은 이제 안 나온다잖아."), 선택을 주변 사람들에게 떠넘기면서 실습을 나간 것이죠. 그렇다면 이 영화의 드라마는 인물이 혼자서 선택을 내릴 줄 아는 쪽으로 변모하는 데서 찾아올 듯 보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습이 끝나기 2주 전 담임이 찾아와 계속 일을 할지 확인할 때 창우가 또 "저를 받아줄까요?"라고 묻자 담임은 그 결정은 회사가 할 일이라면서 "너는?"이라고 재차 질문합니다. 이 대화는, 이제는 창우 네가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너의 마음은 어떠냐고 영화가 질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중반부를 채우고 있는 것은 다른 캐릭터들, 특히 우재와 성민의 선택입니다. 창우의 단짝인 우재와 실습생들 중 에이스인 성민은 모두 회사를 떠나기로 선택합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다른 실습생들이 모두 선택을 끝낸 뒤 창우가 마지막으로 결단을 내리면서, 이들의 처지를 대비하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겹쳐놓기도 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세 인물이 맞이하는 결말은 관객이 노동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합니다.


우재는 험악하고 모욕적인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불과 며칠 만에 회사를 뛰쳐나옵니다. 처음부터 촐싹대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우재는 일을 할 때도 꼼꼼하지 못하고 끈기도 부족해 일찌감치 윗사람들의 눈밖에 납니다. 영화는 나이 많은 여자 팀장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짧은 쇼트를 통해, 우재에 대한 평가가 비단 일차원적으로 '꼰대'스러운 조 과장과 송 대리의 주관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죠. 우재에게도 책임의 소지가 있는 겁니다. 대신 우재는 아빠의 편의점으로 돌아가 시급까지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똑같이 받으면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재는 창우와 달리 기대거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재에게는 편의점을 소유하고 거기서 아들에게 일을 시켜줄 수 있는 아빠가 있는 반면 창우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빠를 여의고 생활비를 보태거나 돈을 빌려줘야만 하는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이 영화가 성별의 대비를 가장 탁월하게 활용한 지점은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요약하자면 우재는 그렇게 쉽게 일을 박차고 나갈 수 없는 창우의 처지를 더욱 부각하는 캐릭터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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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명료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쪽은 성민입니다. 성민은 이미 조 과장과 송 대리에게 에이스 대접을 받고 있고, 창우를 밀어내고 병역 특례에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육청 노무사가 찾아온 날, 성민은 회사에 직접 할 수는 없었던 부탁을 하고 나서 회사를 박차고 나갑니다. 중간 과정은 생략되어 있지만 성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누구나 훤히 짐작할 수 있죠. 여기서 섬뜩한 것은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쥐어준 노무사와 성민이 추가 면담까지 했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닫힌 시스템 밖에서 들어온 사람조차 효율성의 논리로 안전이 뒷전이 되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사실은 (작업장에 전혀 맞지 않는 화장을 하고 말끔한 정장에 치마까지 입고 찾아온) 노무사가 외부인이 아니라 또 한 명의 내부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섬뜩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건 노무사와 세 학생이 의례적으로 설문을 작성하고 질답을 나누는 장면에서 묘사된 다혜와 성민의 대비입니다. 창우가 철야 중 그라인더에 팔을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 바로 다음 날, 다혜는 철야 근무를 강요받거나 일하다가 다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보다 먼저 "없었어요."라고 대답하고, 자리가 파하자 가장 먼저 일어납니다. 이때 다혜에게서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한 노동자의 생존본능입니다. 그러니까 성민은 자신의 권리를 찾으면서 사실상 노동자로서의 생존본능을 거스르기 시작한 거예요. 이건 <휴가>에서 준영이 산재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 응당 받아야 할 돈을 받은 대신 일자리를 잃은 것과 사실상 같은 사건입니다. 성민이 가죽 앞치마와 팔토시, 그리고 추락을 방지할 안전장치를 요구하자 노무사는 창우와 다혜에게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묻습니다. 이때 두 사람은 대답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 아마도 둘의 침묵은 종류가 달랐을 겁니다. 창우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해도 될지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다혜는 말하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겠죠.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창우가 엄마로부터 800만 원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받은 이후 비로소 선택했던 바를, 다혜는 자기만의 이유로 이미 선택하고 이 자리에 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민이 생존본능을 거스르기로 한 이유 또한 명백합니다. 그건 두 번의 사고를 목격했기 때문이죠. 하나는 성민의 학교 선배이자 후배들에게 모범처럼 여겨졌던 수호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창우가 그라인더에 팔을 베인 사건입니다. 두 사고 모두 처음부터 계속 안전에 대한 주의가 요구되었음에도 일어난 참사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다혜가 위쪽 플랫폼에서 빈 박스를 떨어뜨렸을 때 수호도 안전장치의 필요성을 지적했고, 심지어 송 대리조차 조 과장에게 가죽 앞치마와 팔토시를 여러 차례 요구했었습니다. 송 대리의 말에 의하면 가죽 앞치마와 팔토시는 4-5만 원밖에 하지 않지만 조 과장은 그 부탁조차 사장에게서 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뜨며 끝까지 듣지 않습니다. 중간관리자가 듣는 것은 근로자의 말이 아니라 윗사람의 말이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민은 "여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즉시 회사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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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과 달리 창우는 회사에 남습니다. 영화가 명시적으로 그리지 않을 뿐 창우는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까지 일을 하고 있는 거죠. 면담에서 사장이 "사회생활이 참 힘들다, 그렇지?"라고 묻자 창우는 면접 때 조 과장에게 너무 솔직하게 대답했던 것과 달리, 그리고 누군가 질문했을 때 답을 하지 않거나 아주 느리게 했던 것과 달리 곧바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창우의 성장담을 다루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게 비겁하고 초라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창우는 요령을 터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다시 한번, 이 영화는 노동자들이 빠져 있는 순환계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로서는 창우가 정말로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를 않아요. 창우는 돈이 필요합니다. 최저임금의 40%인 '646,464원'만 받아도 막냇동생이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허니콤보를 두 마리나 사줄 수 있고, 한쪽이 고장났는데도 그냥 쓰고 있는 영우의 이어폰을 새 걸로 바꿔줄 수 있으며, 엄마에게 생활비를 보태 영우가 학원을 다니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 갈 집의 집주인이 갑자기 1000만 원을 추가로 요구한 것 때문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집니다. 처음에는 취업지원금과 실습장려금은 안 줘도 된다고 했던 엄마도 창우가 받을 돈의 사실상 전액인 800만 원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고요. 이때 창우는 "거기 취업해야 돈 나오는 거야.", "아직 몰라."라고 대꾸합니다. 집을 보러 가서 집주인의 바뀐 요구를 듣기 직전 장면은 성민이 회사를 떠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즉, 유력한 경쟁자가 퇴사해 취업이 확실시되고 대학 진학과 병역 특례를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에서, 창우는 M&H엔지니어링에 계속 다니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중소기업에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설마 안 뽑아주겠느냐고 말하고, 카메라는 이에 대꾸하지 않는(혹은 못하는) 창우를 얼마간 비춥니다. 그제야 엄마는 "가기 싫어? 힘들어서 그래?"라고 물어본 뒤, "엄마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합니다. 이 순간 창우에게 취업을 하지 않는 선택지는 사라집니다.


창우는 우재나 성민과 달리 회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우재처럼 기댈 곳도 없고, 성민처럼 안정된 자리를 포기할 만큼 권리가 일 순위인 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의 엔딩에 감상적인 액센트가 찍혀 있지 않아서 창우가 맞이한 결말이 특별히 비참한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죠. 예를 들어 창우가 엄청나게 기구한 삶으로 빠져들고 말았다는 식으로 영화는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창우가 일을 계속 한 덕분에 가족들이 새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짧은 장면도 은근히 밝은 느낌을 줍니다. 이게 거짓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근면한 노동은 삶을 증진시키는 보편적인 방법일 것이고, 이것까지 부정하는 건 정반대 방향에서 지나치게 흉포한 관점이겠죠. 그러나 이 밑에 깔린 희생과 그 희생을 추동한 불가항력을 떠올려보면 결코 지금의 엔딩이 희망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지게차를 모는 창우를 따라 패닝하는 쇼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 이 조용한 묘사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도록 만들겠지만, 저로서는 여기에서 <휴가>와 같은 서늘함을 느끼게 되는군요.


여기까지 보고 나면 영화가 입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회사에 계속 남아 있는 세 사람, 다혜와 송 대리, 그리고 한 주임에 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히 다혜는 병역특례 공고가 나온 날 성민이 추천되었다는 이야기를 창우에게 전해주면서 여기는 비전도 없고 자기도 취업이 되면 지원금만 받고 2년 뒤에 나갈 거라고 그를 위로합니다(창우는 결국 이 '비전 없는' 회사에 계속 다니게 되었네요). 이들이 우재나 성민과 달리 회사에 남아 있는 이유를 다혜의 이 말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겠죠. 월급날, 한 주임은 이번 달에 들어온 돈이 너무 적다며 한 주만에 '텅장'이 될 것 같다고 한탄합니다. 그러자 송 대리는 베트남 계약 건으로 다음 달에는 잔업과 특근이 넘쳐날 거라고 말하고요. 그들은 몸을 갈아 일해야만 그나마의 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우재가 송 대리나 한 주임이 받는 돈이 최저시급이랑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말한 것을 관객은 이미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철야 작업 중에, 과로하기도 했고 부주의하기도 했던 창우처럼,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해서 일하다가 죽거나 다칠지도 모를 일이죠.


이 영화의 종반부가 진짜 참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회사를 떠난 우재와 성민에게 닥칠 현실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장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입니다. 군대식으로 굴러가는 회사를 못 참고 뛰쳐나온 우재는 한 달 뒤 해병대에 입대합니다. 또 중반부에 담임이 창우에게 계속 회사에 다닐 것을 권하기 위해 '사람이 직장이 있어야지' 언제까지고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 수는 없다고 한 말은 취업도 대학 진학도 빠그라진 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우재를 겨냥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묵살되자 회사를 등진 성민은 인명사고에 더 빈번하게 노출될 배달 라이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미래가 가장 걱정되는 것은 창우도 우재도 아니고 바로 성민입니다. 우재와 성민이 회사를 떠나기로 선택한 이후, 두 사람에게 해병대와 배달 라이더 외에 다른 선택지는 사라진 듯 보입니다.


<3학년 2학기>는 회사에 남은 사람도, 회사를 떠난 사람도 모두 암담한 상황에 놓아둔 채 마무리됩니다. 특히나 우재와 성민 쪽에 크나큰 아이러니를 부여했다는 점은 이 이야기를 더한층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고요. 이 결말은 한편으로는 육체노동이나 저임금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나 근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노동이 삶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느껴집니다. 이를테면 일이 그 어느 쪽에서도 삶을 옥죄기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따위의 질문 말이죠. 물론 이건 제가 하나의 예시를 조악하게 언어화한 것일 뿐, 지게차를 모는 창우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저와 마찬가지로 어딘지 모르게 암울한 느낌을 받으셨다면 영화가 끝난 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질문 또한 언어 바깥에서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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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영화가 끝나갈 무렵, 창우가 사장을 처음 만나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장은 다혜가 가지고 들어온 사과 한 조각을 창우에게 건네고 자신은 테이블에 예전부터 놓여 있었던 갈변한 사과를 집어 먹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그의 호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이 캐릭터를 갈변한 사과의 '오래되어 부패해가는' 느낌과 연결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사장은 창우에게 계약서를 건네면서 천천히 쭉 읽어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영화는 창우의 시점 쇼트를 삽입하면서 내용을 훑어보는 창우의 시선을 그대로 체현한 듯 아래로 천천히 틸트다운하죠. 이 촬영은 계약서의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창우의 상태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잠시 후 사장은 펜을 주고는 "맨 뒤에 사인하면 돼."라고 말합니다. 사장은 창우가 자신이 무엇에 동의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주기는커녕 이를 확약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호의와 친절함으로 포장된 착취를 짚어낸 이 장면이, 납작하게 저열한 캐릭터인 조 과장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보다 탁월합니다. 견학이나 면담 때 학생들에게 주는 빵이나 음료수처럼 사과라는 아주 작은 달콤함만을 건네면서 회사는 더욱 큰 것을 취합니다. 창우는 사인이 따로 없다며 이름을 적어도 되느냐고 묻는데, 이 질문은 H&M엔지니어링에 실습을 나가기로 할 때 담임이 내민 서류에 서명하며 했던 것입니다. 실습과 정규 채용 사이에서 창우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 두 장의 서류, 두 번의 사인, 그리고 두 차례의 질문이 자아내는 느낌은 제가 처음에 언급했던 순환론의 느낌, 바꿔 말하자면 '갇혔다'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쩔수가없다>를 좋아하지만 제목만큼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살짝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노동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이 제목을 붙일 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3학년 2학기>는 <어쩔수가없다>를 본 이후에 보았는데, 더더군다나 '어쩔 수가 없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은 <3학년 2학기> 쪽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일과 결부되었을 때 얼마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처연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새삼 곱씹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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