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역설적인 것들에 대해서
세상에 기쁜 일들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2019년 1월 1일, 제야의 종이 울리고 우리는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새해를 맞이했다. 누군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해돋이를 보며, 누군가는 가족들과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덕담을 나눈다. 카톡으로 주고 받는 새해인사도 한창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우리는 복을 기원하며 서로에게 좋은 일들만 생기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나 복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행복한 한 해를 바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마음을 나누려는 것은 어느 나라이든지 어느 문화이든지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
또한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에게는 어떤가.
“다 잘 될거야.”
“무조건 붙을거야.”
“좋을 결과 있을거야.”
서로에게 하는 좋은 말, 또는 그렇게 믿고 싶은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말처럼 좋은 일만, 좋은 결과만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들이 이 말속에는 담겨있다.
우리에게는 결단코 좋은 일만 생길 수 없다. 때로는 나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에 휩싸이기도 한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기 쉽고 좋았던 때를 추억하기보다는 후회되는 때를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솔직히 우리의 인생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나날 가운데 좋은 일들이 몇몇 생기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재밌게도 우리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봤을 때 비로소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_ <the end of me>, Idleman KYLE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고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당연했던 건강이 사라질 때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 주변의 남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힘을 뺄 수 있고 때로는 절망에 처절하게 무너지는 내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인사이드아웃의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슬픔이를 가장 답답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슬픔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주인공을 일어나게 했던 건 바로 슬픔이라는 감정. 우리는 고통 속에서 생각의 전환과 회복을 경험한다.
또 흔히 고통에 빠지면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정신 없이 나의 삶을 만들기도 하고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찾아내려고 한다. 또는 덮어두고 마치 없었던 일이었던 것 처럼 두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했을 때 과연 우리는 정말 이겨낼 수 있었는가? 회복이 빨리 찾아왔던가?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 고통을 억지로 이겨내거나 덮어두려고 하기보다 충분히 직면해보는건 어떨까? 슬프면 슬픈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충실해 보는 건 어떨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지 모른다. 얼마나 걸리든지 결코 그 시간들은 헛되지 않다. 그러한 순간들이 또 다른 '나'를 만들어 가리라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carissafulp.blogspot.com/2016/12/the-battle-of-joy-and-sadness.html, https://healed1337.wordpress.com/2018/02/06/pixar-movies-15-inside-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