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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놀 이종원 Sep 16. 2016

EU엠블럼을 보며

프랑크푸르트 빌리 블란트 플라자역에서 

                                                         

프랑크푸르트 시내 한복판에는 유럽연합 엠블럼이 서 있다. 이 엠블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돈이 굴러 들어온다 해서 전 세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엠블럼 뒤쪽의 건물이 유럽 중앙은행이다. 유럽의 통화정책은 물론 유럽의 경제는 바로 이곳에서 결정된다. 유럽 중앙은행 총재는 유럽의 경제 대통령이지만 실제 권한은 독일 총리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11년 그리스, 이태리 국가 부도사태 때 전 세계의 시선이  메르켈 총리의 입에 쏠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도 메르켈 총리의 말 한마디 때문에  전 유럽이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독일 총리의 막강한 힘을 실감하고도 남는다.   두 번이나 전쟁이 패한 나라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이유는 뭘까? 



유태인 위령탑에 헌화하고 있는 빌리 브란트 총리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유태인 위령탑 앞에서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 총리는 헌화를 하던 중 갑자기 무릎을 꿇는 것이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몸이 현기증 때문에 잠시 쓰러진 줄 알았는데 그는 나치에 희생된 폴란드 유태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진심 어린 사죄를 한 것이다. 

처음 브란트가 폴란드에 온다고 했을 때는 폴란드 국민들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왔느냐라는 비아냥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의 진심 어린 참회는 서유럽 국가는 물론 공산진영마저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한 사람의 참회로 전범국가 독일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그는 훗날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의도된 연출이 아니라 왠지 그래야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실제 그는 레지스탕스를 조직해 나치에  대항한 인물이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무릎을 꿇을 이유가 없다. 


“무릎을 꿇는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라는 평을 들었다. 그로부터 동유럽 국가와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노력했고 1971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어쩌면 독일 통일은 바로 브란트 총리의 솔직한 행동에서 시작된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역시  독일마저 무너지면 유럽 전체가 공산화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인 경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독일은 다시 일어서게 된다. 이렇게 유럽 중앙은행까지 유치하면서 세계의  리더 국가로 발돋움했다. 


프랑크푸르트 빌리 블란트역


유럽 중앙은행을 끼고 있는 지하철 역 이름이  ‘빌리 브란트 플라자 역’이다. 동시대 인물을 지하철 역사 이름 붙일  정도로 그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독일의 재기와 부흥 그  이면에는 한 리더의 솔직한 반성과 참회가 있었다. 이웃나라 총리도   이런 솔직한 참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 많은 한국인들이 용서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는 거꾸로 가고 있다. 반성은커녕 전범자의 신사 참배하고 평화 헌법을 개정해 군사 대국이 되려고 하니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이런 행위는 나치와 괴벨스를 추모하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아베 총리가 독립기념관을 찾아 무릎 꿇고 진심 어린  사죄를 한다면 난 과거사에 대해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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