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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훈 Nov 10. 2020

크루아상과 피자

장황하고 웅장하고 싶은 서사

 할 일은 좀 남았지만 크루아상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대표님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가 결국 뺑오 쇼콜라 크루아상을 얻어먹는다.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살짝 큰 이 녀석을 번쩍 들어 엄마의 손길이라는 버거의 그것을 먹는 듯 와그작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입 안 가득히 농밀한 쇼콜라가 퍼진다.


 한 입, 두 입 기계적인 저작운동을 이어가던 찰나, 초콜릿의 달콤한 성분들이 사방에 들러붙어 결국 입천장은 가시가 돋친 듯 까칠해진다. 아니, 까진 건가. 무튼,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이대로 까칠한 입천장을 방치했다간 불효를 저지르는 것만 같아 커피를 찾아 마시기로 한다. 때마침 오늘부터 가오픈이라는 에스프레소 바를 찾아간다. 아뿔싸. 공사 지연으로 오픈이 일주일 미뤄졌단다. 새로 가오픈이라고 공지하는 카페는 기존 오픈일에 +7일을 하는 게 이제는 거의 정석이 된 듯하다.


 갈 곳을 잃은 나는 괜히 합정역 사거리로 나가 프로 노을 헌터로 빙의한 듯 불그스름하게 생긴 노을이나 여러 장 찍어본다. 찰칵 찰칵 이제는 무의식의 일부가 된 듯 혼신의 촬영을 하고 있던 그때, 피붙이 가족들이 모여있는 톡방이자 이름하여 '패밀Lee' 톡방엔 타지에 있는 누나가 피자를 쏜다며 메뉴를 고르라고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복도 이런 먹을 복이 없군. 그리하여 황급히 내선순환 열차와 동인천 특급열차에 몸을 싣고서 나의 가장 즐거운 홈 스윗 홈으로 향한다.


 집 도착과 동시에 배달된 글로벌 싸(4)가지 맛이 있는 도미노의 그것을 받아든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살던 약 2만년 전엔 풍만한 몸뚱아리가 미의 기준이라고 했던가. 미의 기준은 돌고 돌기에 언젠가 풍만한 몸을 찾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제는 내가 미의 기준이라는 po당당함wer과 함께 남아있던 피자 한 조각 마저 블랙홀 같은 나의 동그란 입에 쑤셔 넣는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피자는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결국 장황하고 온갖 수식어로 가득한 이 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 피자 먹은 거 자랑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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