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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훈 Nov 11. 2020

책 선물

책을 선물 받았다.

 누군가에게 비집고 들어갈 아주 자그마한 명분이 있다면, 그 명분이 작으면 작을수록 가능한 한 선물을 하는 편이다. 윗사람 아랫사람 가리지 않고 어떤 상황이든 가리지 않고 선물을 한 탓에 한때 내 별명은 '선물 빌런'이었다. 이를테면 최근 일하면서 밤새는 날이 많아진 친구에게는 자양강장제를, 새해에는 달라지리라 굳게 다짐하던 친구에겐 다이어리를, 무더운 여름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친구에게 아이스크림을 은근슬쩍 찔러 넣어주는 식이다. 값이 많이 나가진 않더라도 예상치 못한 선물을 건네면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 등 기대보다 오조 오억 배나 큰 감사가 돌아온다. 어찌 되었든, 크든 작든 선물을 주고 나면 사실 받은 그 상대방보다 내가 더 기쁘다. 되려 내가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생일이나 집들이, 졸업과 같은 대형 이벤트에도 선물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선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선물을 고르는 데에 괜히 더 신중해지기도 한다.


 선물이라 하면 자고로 주고 싶은 것보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게 낫다. 백날 주고 싶은 걸 줘봤자 상대방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물건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줄곧 선물을 골라왔다. 그러다 딱히 필요한 게 없어 보인다면 그제야 주고 싶은 것을 주곤 하는데 그럴 때면 보통 책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물할 책 선정은 주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과 결이 닿아있는 내용의 책을 기준으로 고르는 편.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위로나 응원, 공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랄까. 나름대로의 마음을 담아 책을 선물하면 누군가는 잘 읽어주고, 누군가는 책장에 바로 꽂아두는가 하며 누군가는 또 다른 이에게 토스해버리거나 한다. 책의 행방이야 어찌 되었든 이미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달한 것으로 내 역할은 끝났으니 이후의 일은 상대방에게 맡기기로 한다. 잘 읽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해서, 나는 책을 선물 받는 걸 좋아한다. 그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추측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이 3번이나 반복되고 나서야 겨우 듣고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힘껏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는 애써 출근 준비를 한다. 갑자기 울리는 톡. '이 시간에 울리는 톡은 아마도 동의하진 않았지만 눈속임으로 이벤트 메시지 수신 동의를 체크하게 한 광고성 메시지뿐인데, 누구지?'라며 핸드폰을 열어 채팅창을 열었더니 한 친구가 기프티콘을 통해 내게 책을 선물했다는 것.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뜬금없이 책을 선물하다니.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출근 준비하던 모든 행동거지를 멈추고 온 체중을 실어 그 친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가령 '너무 고마우니 다음에 내가 밥 살게' 하는 등 더 큰 선물로 너를 감싸줄 거라는 예고를.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나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로부터 갑작스레 책을 선물 받은 일은, 쌀쌀한 날씨 가운데 옷 속에 넣어둔 핫팩과 같은 따뜻함으로 두고두고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게다가 이날만큼은 매주 지병처럼 앓아오던 월요병도 없었으니,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건강했던 날이었기에. 어쨌든 항상 들고 다니던 전자책은 잠시 내려두고 오랜만에 종이책을 읽게 됐다. 


이 친구에게 또 뭐 하나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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