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1.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져 버리는 노란빛의 낙엽을 보며 걷다 문득 노란색을 참 좋아했던 그 아이가 생각났다. 몇 시간이 안 되는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지만 많은 즐거움과 동시에 핑크빛 미래에 대한 기대를, 그리고 한편으로는 많은 고민과 걱정을 내게 안겨준 아이였다. 헤어지기 전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악세사리점에 들러 하늘색 머리끈을 사서 건네주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데 왜 하늘색을 줬는지는 지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무언가 어울리는 듯해서 사줬는데 괜히 머쓱타드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인다. 어쩐지 점심에 소스로 찍어 먹은 머스타드조차 노란색이다. 짐짓 허탈하게 웃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본다.
2.
`방송국 놈`이라는 부캐의 삶을 살기 의해 오목교역 앞 방송국으로 출근하던 시절. 오목공원 앞에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낙엽만 보면, 만 원이(녹색 잎이) 오만 원으로(노란 낙엽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 같아 보여서, 왠지 내 통장에게 늘 푸르른 소나무가 되어달라며 바램을 담아 노래를 부르곤 했다. 물론 통장 잔고는 비웃기라도 하듯 얼마 못 가 인생을 끝마친 낙엽수가 된 듯 마른 가지밖에 안 남았지만. 아무튼 내 지갑은 늘 가벼웠어도 앞으로는 나름대로 맑고 쾌청할 줄 알았던 목동 라이프는, 주어진 수명 내내 겨우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데에 힘을 몰아서 쓰느라 힘이 빠져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버린 낙엽의 삶처럼 나도 그 해를 넘기지 않고 방송국과 손절을 해버리면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