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이 아닌 해가 있었을까? 나 역시 사상 최대의 취업난이라는 시대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선배들 말로는 100군데는 낼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취업 공고가 뜨는 곳은 앞뒤 재지 않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덕분에 면접도 많이 보게 되었다. 떨어지더라도 점점 면접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꼈으니 나름 괜찮은 성과였다. 아무튼 운 좋게 졸업하면서 바로 취직을 했고, 12월에 신입사원 연수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 무렵 다른 곳에서 최종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의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 순간이 기억나는 걸 보면 중요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연수원 숙소에 누워서, '이 회사는 믿을만한 걸까? 떨어지더라도 최종 면접을 보러 가야 할까?' 고민했다. 결론은 가지 않았다. 이유는 두려워서다. 최종 면접에서 탈락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눈앞의 확정된 결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아마 같은 기간에 면접 보고, 같은 시기에 연수원 입소가 시작되었다면 다른 회사에 입사했을 것이다. 나를 먼저 신입사원 연수원에 부른 회사의 선점 전략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그 이후로 내가 15년이나 다니게 됐으니 말이다.
입사 후 내가 한 주요 업무는 영업관리였다. 방문판매원을 모집하고 교육해서 판매인으로 양성하는 일이었다. 회사에는 나 같은 영업관리직이 100여 명 있었고 매달 연수원에서 교육도 받았다. 당시 임원은 '100'을 강조했다. 무슨 일이든 100번은 말해야 하고, 100번은 시도해야 하고, 100명은 채용해봐야 하고, 100번은 팔아봐야 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라는 말 같은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왜 이렇게 100에 집착하는 것일까? 백년해로, 백일잔치, 만난 지 100일, 수능 100일 전.
물리적인 숫자 100을 의미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많이', '오래'라는 의미를 내포한 단어일 수도 있다. 태어난 지 100일이 되면 그래도 생존 가능성이 높아져서 한 고비 넘겼다는 뜻이고, 만난 지 100일이라는 것은 그동안 상대방에 대해 알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었다는 뜻일 것 같다. 불안하고 두렵다면 100번 해보자. 100일 해보자. 그러면 결판이 나겠지.
예전에 개그맨 이홍렬 씨가 진행하던 ‘이홍렬쇼’가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분의 마지막 방송 멘트가 기억이 난다. “1부터 100까지 세어야 하면 너무 길고 많아 보이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10번 말하면 금방 100번이 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래, 고민할 시간에 100번, 100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