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이유식의 시작
아이는 쉬지 않고 자란다.
아이는 쉬지 않고 자란다.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자 출생 시 몸무게의 2배를 훌쩍 넘겼고, 키는 20cm 가까이 자랐다. 하루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아이에게 눈을 고정하고 있는데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내가 아이를 보고 만지고 안고 있던 그 순간에도 아이는 자라고 있었을까. 환경 다큐멘터리에서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모습을 아주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촬영하고, 몇 초만에 빠르게 보여주던 장면이 생각난다.
아이는 이제 눈앞에 보이는 물건을 손으로 잡고 흔들고 제 입에 가져간다. 딸랑이와 젖병, 쪽쪽이에서부터 리모컨과 핸드폰, 뜨거운 커피잔까지 아이의 손이 닿는 범위는 넓고도 두렵다. 아이가 특히나 적극적으로 입을 벌리며 손을 뻗는 대상이 생겨났는데, 그게 바로 머그컵과 숟가락이었다. 식사할 때, 가족들이 모여 티타임을 가질 때면 아기 의자나 그네에 앉혀 옆에서 놀게 했더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식탁 위 사정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가 왔다.
아가야, 엄마가 맘마 해줄게.
이유식은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이고 싶었다. 십 수 년째 취미이자 일상으로 요리를 해왔다. 나름 손맛에 자부심도 있어 친한 친구들에게 반찬을, 회사 사무실에 쿠키를 만들어 선물하곤 했는데 정작 내 아이의 이유식을 귀찮아하면 아이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 뭐든 글로 먼저 배우고 찾아보는 간접 경험이 먼저인 초보 엄마는 육아서적, 이유식 관련 책, 소아과 의사 선생님들의 유튜브를 찾아보며 이유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째, 직접 만들어 먹인다. 둘째, 직접 만들어 먹이기 위해선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셋째, 토핑 이유식으로 진행한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기 전까지는 내 손으로 아이의 맘마를 준비하겠다 다짐하며 제일 먼저 구매한 것은 이유식 마스터기였다. 결혼과 출산 전에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그 이름도 거창한 '이유식 마스터기'는 재료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설정한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재료를 찌고 갈아주는 어마어마한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매 끼니를 직접 만들려면 이 정도 투자는 필요하다는 첫 번째 타협이었다.
초기 이유식의 시작은 쌀미음이었다. 쌀이 주식이 아닌 미국에서도 이유식의 첫 시작은 라이스 시리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쌀은 알레르기 반응이 적어서 처음 음식을 접하는 아이에게 아주 안전한 식재료라 한다. 생쌀을 불려 물을 부어 끓여주고 으깨주는 정통적인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주기적으로 딱딱한 생쌀을 불리고 익히고 먹기 좋게 체에 걸러내는 수고를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햅쌀로 맛있는 밥을 지어 그 밥으로 죽을 만들었다. 두 번째 타협이었다. 이 두 가지 타협만으로도 이유식에 대한 부담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설레는 마음과 작은 걱정을 안고 처음으로 쌀미음 먹이던 날, 10배 쌀죽을 만들고 체에 한 번 더 걸러 부드럽고 고운 미음을 만들었다. 한 끼 양으로 어른 밥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조금 넘는 20ml를 준비해야 하기에 한 번에 일주일 치를 만들어 오늘의 끼니를 제외한 양은 20ml, 30ml 단위로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처음으로 쥐는 이유식 숟가락은 작고 가볍고 말랑말랑했다. 티스푼보다도 작은 숟가락을 연필 쥐듯 쥐었다. 초보 엄마의 비장한 마음가짐과 달리 아이는 숟가락을 잡고 그릇을 엎고 싶어 양손을 벌려 달려들었다. 겨우겨우 한 입 넣었을 때, 아이는 입술과 혀로 젖꼭지를 누르며 빨아먹던 습관대로 숟가락을 혀로 밀었다. 나도 아이도 어색한 숟가락질이 몇 번 오고 가는 사이 아이는 나보다 빠르게 숟가락에 적응했고, 아직 어색한 나의 숟가락질에도 입을 뻐끔뻐끔 벌리며 미음을 받아먹었다. 마치 아기새처럼 받아먹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줄어드는 미음이 아쉬웠다. 철없이 내일 끼니까지 꺼내 먹이고 싶을 정도였다.
토핑 이유식의 시작
토핑 이유식은 사전적 정의가 있는, 사회적 합의가 진행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유식을 준비하며 참고한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유튜브와 책에서 소개된 방법으로 밥에 반찬을 토핑처럼 얹어주는 방식이다. 처음 음식을 접하는 아이가 식재료 고유의 맛을 느끼고, 음식에 대해 호기심과 재미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토핑 이유식을 결정했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주도 이유식을 진행하기에 나는 내공이 부족하다는 또 하나의 타협이기도 했다.
쌀미음을 진행한 뒤에는 3, 4일에 한 가지씩 새로운 재료를 추가했다.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적응기이자 아이의 알레르기 반응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4일 주기로 추가한다면 더 좋겠지만 오늘의 날짜도 매일 까먹는 나는 타협하는 김에 조금 더 기억하기 쉽도록 월요일 오전, 목요일 오전마다 새로운 재료를 추가하기로 했다. 첫 주에는 쌀미음, 쌀미음과 소고기를 주었다. 인터넷으로 육우를 주문하려던 내 옆에서 엄마, 아빠는 하나뿐인 외손녀의 첫 이유식으로 꼭 좋은 고기를 주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를 전했고, 처음으로 동네 정육점에서 한우 투플러스 안심 한 덩이를 샀다. 한우 200g의 가격은 성인 네 명이 먹을 수육용 돼지고기 두 근보다 비쌌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고급 소고기를 배불리 먹이나 싶은 마음으로 과감하게 지역화폐를 긁었다.
확실히 소고기는 미음보다 먹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너무나 신기하게도 이유식을 먹고 고기를 먹으며 아이의 응가가 바뀌었다. 응가는 점점 더 되직해지고, 색깔도 변했다. 이젠 변비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청경채, 양배추와 같은 잎채소를 준비했다.
쌀미음 한 입, 쌀미음과 소고기를 섞어서 한 입, 청경채와 소고기를 섞어서 한 입. 이렇게 먹다 보면 한 끼에 아이가 느낄 수 있는 맛이 다양해진다. 끼니때마다 토핑 서너 가지를 같이 준비하다 보면 아이 식재료를 얼리는 큐브도 많이 필요하고, 정리해야 하는 설거지 거리도 늘고, 재료마다 따로 손질하여 큐브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하루 두 번 식사 시간마다 아이가 느끼는 세상이 넓어진다 생각하면 이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할 만하다.
감사하고 기쁘게도 우리 아이는 먹는 것을 즐긴다. 풀냄새 폴폴 나는 청경채도 밀어내지 않고 잘 먹는다. 먹이는 재미가 있어 새로운 재료를 줄 날이 손꼽아 기다려지기도 한다. 토핑 이유식을 하면 식재료에 대한 아이의 호불호를 알 수 있다는데, 지금까지 아이의 반응은 호호호의 연속이다.
너의 세상이 넓어질 때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아이가 느끼는 맛과 향이 늘어나고,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이 쌓여간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의 세상은 또 한 뼘 넓어지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신비한 장면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즐거움과 영광 뒤에 불쑥불쑥 솟아나는 두려움이 있다. 너의 세상이 넓어질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너의 세상을 넓혀주고 있는 걸까, 오히려 너의 세상이 넓어지는 순간순간에 나는 브레이크를 걸고 있지는 않을까.
혹여나 나의 세상이 좁아 너의 세상이 넓어지는 것을 막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나는 오늘도 열심히 공부한다. 너의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어줄 방법을 공부한다. 이젠 호기심보다는 심드렁한 귀찮음이 앞서는 내가 너의 호기심을 무심히 지나치지는 않을까 무서워 나는 오늘도 열심히 공부한다. 너의 세상에 펼쳐질 무한한 질문을 놓치지 않도록. 사랑하는 아이야, 엄마 잘하고 있는 것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