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다.

예쁘고 빠릿빠릿하던 그때가 나의 전성기인 줄 알았지만

by 모든어제

나는 꽤 오래 ‘산소 같은 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산소 같은 여배우와 말투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영상이나 녹음으로 듣는 내 목소리가 너무나 어색하고 낯설지만, 목소리나 말투에 대해 칭찬을 많이 받는 편이다. 아주 오랜 기간 이와 같은 평가 아닌 평가를 받았음에도 큰 감흥은 없었다. 목소리가 좋은 게 내 성적이나 업무 평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도 목소리 좋은 다른 이를 만나면 ‘아 목소리가 참 좋으시다’ 이외의 임팩트가 없었기에.


하지만 나는 이제 내 목소리가 자랑스럽다. 어젯밤 잠들기 전, 잠에 취해 비몽사몽 간 아이가 해준 이야기로.


나는 엄마를 사랑해. 엄마의 다정한 말이랑 예쁜 목소리를 좋아해.
나는 엄마가 ‘아가야, 사랑해’라고 하는 목소리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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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태도와 말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운다고 보통 이야기한다. 나는 뭔가 부족한 엄마인 걸까. 아이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는 법은 아직 막막하게만 느껴지는데, 아이의 한 마디에 내 자존감이 높아진다. 30년 넘게 느끼지 못했던 내 목소리의 효용과 가치를 아이에게서 처음 느꼈다. 내 아이가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낀다면 성적에도, 직무에도, 내 성과 평가에도 한 톨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 목소리에 새로운 가치가 생겨난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아빠는 내게 '엄마는 아이의 우주야. 너는 이제 아이에게 전부인 존재가 되는 거야'라 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당황과 두려움의 연속인 그때엔 그 말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 싫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따뜻한 우주를 선물한다는 건 생각보다 멋지고 내 생에 언제 또 올까 싶은 나의 또 다른 전성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예쁘고 머리도 빠릿빠릿 돌아가던 그때가 나의 전성기인 줄 알았는데, 그때에도 나는 누군가의 애틋한 연인 또는 빠릿빠릿한 막내 직원 정도였지 감히 누군가의 우주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


나는 나의 아이 덕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