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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Aug 30. 2022

농약이 아니라 ‘작물 보호제’라는데

농약에 대한 도시 텃밭 농부의 고민


‘아! 이게 무슨 냄새지?’


주말농장에 들어서는데 역한 냄새가 훅 들어온다. 농약 냄새다. 여러 구좌를 분양받아 제법 크게 농사짓는 할아버지가 분무기로 고추에 농약을 치고 있다. 내 밭과 떨어져 있는데도 바람이 부니 농약이 이렇게 멀리 날아오는가 보다.


주말 농장에서의 농약사용은 좀 미묘한 문제다. 무농약으로 푸성귀를 키워 샐러드나 쌈으로 먹고 싶은데, 바로 옆 밭에서 농약을 치면 찝찝하다. 반대로 우리 밭에 방제를 하지 않아 진딧물이나 병충해가 옆집으로 번지면 피해를 주게 된다. 

20평의 주말 농장에 감자, 고구마, 쌈 거리, 고추 등을 키우고 있다.


어떤 분은 고추를 늘 100포기쯤 심어 김장 때 쓸 고춧가루를 얻는다고 했다. 탄저병이 돌면 고추 농사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농약을 치는 김에 옆 밭에도 뿌려 준다고 한다. 옆집이 싱싱한 풋고추를 먹기 위해 고추를 심었다면 놀라 자빠질 노릇이다.


공공기관에서 분양하는 텃밭은 이런 이유로 농약사용을 금지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분양하는 주말농장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작은 주말 농장에서도 친환경 농사와 관행 농사가 충돌하게 된다.


20년 전, 부친이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병상 옆에서 간병했었다. 옆 병상에는 홧김에 제초제를 마신 한 중년 사내가 있었다. 의식은 말짱했는데, 검게 변한 얼굴에 수시로 피를 토하는 모습이 너무 끔찍했다. 그는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내게 농약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죽음’이다. 


“배 농사에는 농약을 몇 번이나 쳐야 할까요?”

‘일곱 번? 아니 열 번쯤이요.’

“제대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열다섯 번은 쳐야 합니다.”


귀농귀촌 교육을 받는 중이다. 그런데 모든 작물 재배 교육에 ‘농약’이 기본으로 들어 있다. 배 농사에도 그렇게 농약을 많이 쳐야 한다니 충격이다.


농약회사에서 나온 한 강사는 아예 농약 예찬론이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벼, 밀 등 곡류는 40%, 채소는 55%, 사과, 복숭아 등 과수는 90%나 수확량이 감소한다고 한다. 병해충 방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곰팡이 독이 생겨 오히려 건강에 해로우니 농약사용은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이제는 ‘농약’이라 하지 말고 ‘작물 보호제’라 불러주길 원했다. 

일부 친환경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대개 농약으로 방제한다 


농사짓는 분과 이야기해보면 농약 없이 농사짓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단 한번 방제시기를 놓쳤는데 대추 농사를 망쳤다는 분, 집에서 먹을 김장 배추지만 초기에 농약을 안치면 벌레 때문에 잎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분. 사과 밭의 농약 방제를 ‘소독’이라고 굳이 표현하는 분. 하지만 전원주택지 선택 시 과수원 옆은 반드시 피하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직 농약에 대한 거부감은 큰 것 같다.


일부 친환경 농산물을 제외하고 마트나 시장에서 산 농산물은 농약에 의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식이나 배달로 먹게 되는 식재료가 친환경 농산물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 나 또한 벌레 먹지 않고, 색깔이 선명한 농산물만 고른다. 농약이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깊게 들어온 것이다.


농사로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서 농약 타령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많은 농민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걱정이 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아주 조심스럽다.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어설픈 초심자, 즉 도시 텃밭 농부가 갑자기 농약을 접하고 드는 걱정 정도로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귀농 교육을 받으면서 작물에 맞는 농약 선정, 정량 사용, 방제 시기 관리만 철저히 하면 농약 사용도 큰 문제가 없겠다는 확신은 든다. 예전에 문제가 되었던 그라노손 등 맹독성 농약은 이제 판매가 금지되었고, 최근 농약 먹고 죽었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농약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공판장이나 푸드 마켓의 불시 검사에서 허용되지 않은 농약이 검출되는 기사가 아직도 뜨는 것을 보면 농약 역시 신뢰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신뢰가 허물어지니 내가 직접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가족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거기에 농약사용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 텃밭은 무농약을 원칙으로 한다.

일주일 전, 텃밭에 김장용 배추 모종을 심었다. 아직 별 문제가 없는데 주변에서는 약을 쳐야만 수확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내 텃밭 작물은 무농약으로 재배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가끔은 흔들린다. 일단 친환경 방제를 위해 님(Neem) 오일만 수시로 뿌리면서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다. 


병충해가 심해서 배추 수확을 할 수 없으면 해남 배추를 사서 김장하면 된다. 내 밭에서 농약치고 키운 배추나 시중에서 산 배추나 거기가 거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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