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의 피에타

by 이준희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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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났다. 망자와 눈빛 한 번이라도 마주쳤던 사람들이 모이는 장례식장. 비록 먼 사이일지라도 빈소에는 잔잔히, 때로는 해일처럼 울음 파도가 밀려든다. 울음의 파고는 고인과의 친분에 따라 높고 낮으며, 몇 분이 지나서도 좀처럼 멎지 못한다.


2년 전 5월 초순, 햇살이 따스해서 온 신경이 축 늘어졌던 어느 날이었다. 연락처를 오르내리다 문득 궁금한 이가 생겼다. 같은 모임에서 자주 만났지만, 언어 장애로 이성에게 향하는 언어의 경로가 서툴던 청춘의 시기. 그 시절에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마음 깊이 들어앉은 이도 있었고, 속울음을 삼키며 다가가고 싶었던 이도 있었다.


조심스레 톡으로 보고 싶다 전했다. 때론 돌발 상황이 삶이라는 닫힌 문을 열어주기도 하니까.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괜히 연락했나?' 싶다가도, '청춘을 통과하는 동안 주위 시선 때문에 전하지 못한 마음이 얼마였나' 싶어 마음을 다잡았다.


강이 보이는 카페에서 만난 날, 음료를 주문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요즘 왜 모임에 안 나오냐"는 물음에 그는 좀 버거워 쉬고 있다고 답했다.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나는 마음을 표현했다. 아니, 부탁을 했다. "좋아하는 것 같다고, 사귀어 보고 싶다고."


막무가내인 고백에 그는 당황했을 것이다. 유튜브 속 사례들처럼, 작은 배려 하나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 사랑으로 오해하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오해를 피하려 사랑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였음을 잘 알면서도, 그날은 달랐다.


'그 별'은 내 사랑을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연거푸 대화를 이어가려 애썼지만 우리는 그저 차만 마셨다. 어떻게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그 어려운 시간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들려주고 싶었지만 입은 꾹 닫혔다.


벌써 2년이 흘렀다. 작년 하반기 동생의 결혼을 지켜보며 내 마음에는 별똥별 같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원가족의 분리와 동생네의 새 출발.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이제는 부모님을 지켜드려야 한다는 '맏이 콤플렉스', 그리고 하루하루 더 느려지는 몸놀림 속에서 나는 내일의 활동을 걱정하며 두려움과 놀이 중이다.


모임에 나오지 않겠다며 헤어졌던 '그 별님'을 1년 반 만에 한 상갓집에서 다시 마주했다. 먼저 와 요기를 하던 내 옆에 그가 앉더니, 휴지를 꺼내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아리고도 따뜻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찰나,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묘사한 '피에타'가 떠올랐다. 아들의 고단한 여정과 마음까지도 인내로 품으신 성모님, 그리고 몸을 축 늘어뜨리며 그 품에 쏙 안긴 예수.



희뿌연 겨울바람처럼, 마흔이 되도록 충족되어야 했던 어린 날의 결핍과 영혼이 날뛰는 사랑은 여전히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이다. 가족 외의 세상에 나를 증명하려 소리 없이 애써온 시간들. 이제 그 시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려 한다. 어떻게 보이든 중요한 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시간은 중요하다. 미래를 차곡차곡 준비하는 이에게, 그가 그리는 미래는 기다리고 있을 내일로 찾아

올 것이다.

가장 아픈 곳에서 사랑의 시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