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관점에서 정신 증상을 이해하는 모델
전생은 윤회 사상을 기초로 한다. 윤회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인 업(業, karma)에 따라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삶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사람의 영혼이 발전해 가면서 궁극적으로는 신과 일체가 되는 것이 윤회의 목표이다.
‘윤회’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를 떠올리지만 윤회는 불교 문화권에서만 언급된 것이 아니다. 전생과 환생, 윤회에 관한 기술은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없이 있어 왔다. 윤회를 믿는 종교는 불교, 힌두교 뿐 아니라, 조로아스터교, 유태교, 도교(장자), 초기 기독교, 신지학(神智學) 등이 있다.
윤회는 불교와 힌두교의 교리로 처음부터 받아들여졌다. 초기 힌두교 경전인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윤회와 환생에 관한 많은 글들이 있고, <바가바드 기타>에도 “인간은 불멸이며 거듭거듭 태어난다. 삶을 이어가며 전생에서 얻은 지혜들을 다시 찾아 완성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간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대 인도의 종교적 성전인 <마누법전>에도 윤회(輪廻)와 업(業), 해탈에 관한 논의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죽음과 영계에 관한 기록의 원전으로는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가 으뜸으로 꼽힌다. 이 책은 삶과 죽음, 사후의 세계, 환생과 해탈의 문제를 그 어떤 고대의 가르침보다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업(業)이 다음 생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석가모니도 제자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자신의 현재의 삶을 보라.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자신의 현재를 보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지는 삶들이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기원전 5~6세기의 그리스 철학에서도 윤회사상이 등장한다. 그리스의 이데아론은 인도철학과 비슷한 윤회의 도식을 지니고 있다. 죽음으로 신들이 모여 사는 이데아의 세상을 경험하지만, 아직 완벽한 이데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은 다시 사바세계로 윤회를 한다고 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영혼은 불멸하고 인간 뿐 아니라 동물로 바꾸어 태어나고, 전생에서 현생, 그리고 내세로 유전한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고상한 혼은 사후 이데아의 세계로 되돌아 오지만 타락한 영혼은 인간이나 동물의 육체에 깃들어 환생한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역시 윤회를 믿었기 때문에 죽음을 맞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고 고백하였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국 등에도 윤회에 대한 지혜가 광범하게 퍼져있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에니우스는 카르마(업)와 환생의 개념을 로마사람들에게 소개했고, 역시 시인이었던 버질도 자신의 작품 속에서 환생을 설명했다. 기원전 4세기경 중국의 사상가였던 장자(莊子) 역시 윤회를 믿었고, 환생을 하나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대부분의 원시 종교가 영혼의 존재와 윤회를 믿었고, 북미 원주민,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사람들도 환생을 믿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성행했던 조로아스터교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영혼은 영원하지만 육체는 유한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영혼의 발전을 통해 신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영혼은 선행을 통해 발전한다고 함으로써 선행을 강조하였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도 ‘신이 생명을 창조했고, 생명은 거듭거듭 태어난다... 신에게 돌아올 때까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가르침 이후 초기 기독교에서도 환생과 윤회는 정식으로 인정된 교회신학의 일부였다. 당시의 크고 강력했던 기독교 종파인 그노시스파와 마니교도들은 윤회설을 가르쳤다. 초기 기독교 역사의 약 400년간 환생설은 보편적인 교회 가르침의 일부였다. 그러나 종교와 권력이 결탁하면서 개인적인 노력과 발전으로 영혼의 구원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 윤회를 가리키던 당시의 용어인 ‘선재론(先在論)’이 교회신학에서 삭제되었다.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는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약성경에 실려 있던 윤회에 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하여 서기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복음서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전부 삭제해버렸다. 또한 6세기경 서로마제국에서는 오리게네스의 윤회설이 널리 퍼져 인정받고 있었는데, 동로마제국의 폭군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는 독단적으로 윤회설을 이단이라고 결정하고, 553년 콘스탄티토플 공의회를 소집하여 환생 사상을 가르쳤던 오리게네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윤회 사상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을 신격화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6세기 이후 환생설을 신봉하던 교파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자생되면서 기독교가 지배하던 서양에서는 윤회설이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환생설은 이단으로 몰렸던 교파들의 신앙 속에서 근근이 이어져 왔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잠깐 지성인들의 관심을 끌었다가 곧 잊혀진 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신지학(神智學) 운동으로 이어지며 기존의 기독교 교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신지학자들은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사상을 연구하여 서양의 기독교적 전통과 조화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프로이트와 쌍벽을 이루는 정신의학 분야의 개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환생이라는 개념은 인류가 태초로부터 지녀온 확신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게 지녀야 될 신념이다.’라고 말했다. 융은 환생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고대의 많은 문헌들과 신앙, 사상가들은 윤회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윤회를 통해 영혼이 발전하고 신(神) 하나가 될 때까지 삶을 반복한다고 하였다.
전생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존재한다면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할 것이냐는 질문은 결론이 날 수 없는 해묵은 논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전생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에게 반대로 전생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똑같이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실험으로 증명 가능한 것만 과학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견이다.
윤회 사상이란 인간의 영혼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모습의 다양한 생을 거치며 성숙되어 마침내 슬픔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윤회 사상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따른다. 따라서 현재의 알 수 없는 극심한 공포증, 신체증상, 정서적 문제들도 과거 생의 어떤 행위들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하여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진식(교육학박사, 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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