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임때 경기도 안산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첫 해에 중학교로 발령받아 6명을 맡았는데 5명은 1학년이었고, 1명만 3학년이었습니다. 그 중 3학년 학생인 재성(가명)이는 지적장애 특수교육대상자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똑똑하고 의사소통이 잘 되었습니다. 붙임성도 좋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 통합학급에서도 잘 지내는 편이었습니다. 말을 잘 듣다가도 가끔 이해가 안되는 행동을 할 때가 있어 특수학급에 내려올 때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든 일을 혼자서 잘 처리할 정도로 매우 뛰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때 우리학교 근처에는 일반계고등학교 하나와 특성화고등학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근처 일반계고에는 특수학급이 있었지만 특성화고에는 특수학급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성이와 평소 지내면서 ‘재성이 정도의 능력이면 나중에 고등학교 진학시 특성화고등학교에 가서 전문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실제로 재성이의 인지능력 및 생활능력은 비장애학생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가장 뛰어났으니까요.
저는 재성이가 그냥 다른 학생들처럼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계고로 진학하는 것보다는 특성화고로 진학해 재성이가 좋아하는 전문 영역을 공부하면 향후 취업에 더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수교사나 보조인력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학생이면 당연히 특수학급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맞지만, 완전통합 학생이라고 봐도 무방한 재성이 정도면 특성화고에 특수학급이 없더라도 충분히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진학 서류를 작성할 시기가 되었고 재성이와 부모님께 의사를 물어보았습니다. 재성이는 우리 학생들보다 통합학급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해 특성화고로 진학하고 싶다고 하였고, 부모님 역시 일반계고 보다는 갈 수 있으면 특성화고로 보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재성이 부모님께서도 재성이가 그곳에서 전문적으로 3년 동안 열심히 기술을 익히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충분히 취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셨습니다. 장애 학생을 둔 부모로서 아이의 취업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일반계고에서는 학생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거의 가 다 제과제빵, 바리스타 등 틀에 짜여 있는 직업교육을 받는 반면, 특성화고는 다양한 과가 있어 원하는 과를 선택해 전문 기술을 배우면 좀 더 차별화된 직업교육을 받아 취업 기회가 확대될 수 있습니다.
재성이 자신도 근처에 있는 특성화고에 무척 가고 싶어 했고 어느 순간 그 학교 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재성이가 충분히 특수교사가 없더라도 그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근처 특성화고를 1지망으로 쓰고 또 바로 근처에 있는 일반계고를 2지망으로 썼으며, 3지망은 조금 떨어져 있는 일반계고로 지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약 세 달 정도 지나고 고입 특수교육대상자 선정・배치 공문이 온 날, 재성이는 3지망 했던 학교로 배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경기도교육청에 물어보니 시각, 청각, 지체, 건강장애 학생을 제외한 장애영역(예: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등) 학생은 특수학급 배치를 권장한다는 내부 지침과, 재성이의 지능검사 및 사회성숙도검사 지수가 매우 낮게 나와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계고로 배치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근처의 일반계고는 이미 과밀학급이라 어쩔 수 없이 3지망했던 학교로 배치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의신청 기준에 따라 재심을 청구하였습니다. 지능검사와 사회성숙도검사가 신뢰도와 타당도를 갖춘 검사지였다고 하더라도 실제 학생들의 인지능력 및 생활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아이들일수록 검사 시 주의집중을 하지 못해 검사결과가 아이의 능력보다 한참 밑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상이 역시 실제 생활능력 및 인지 수준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지만, 그날 컨디션이나 응답시 무성의한 태도로 검사 결과가 낮게 나왔을 거라 추정됩니다. 또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7조 1항에 ‘특수교육대상자는 일반학급으로 배치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고, 제36조 4항에는 ‘배치 결정을 할 때에는 청구인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생이나 학부모, 특수교사에게 의견 진술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고 단순히 도교육청의 내부 지침과 검사 결과만을 가지고 일반계고로 배치하는 것은 분명 중대한 법 위반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의신청서에 단순히 검사 결과만을 가지고 학생의 능력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학생의 능력이 과소평가될 수 있으니 학생과의 면담이 꼭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또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규정된 대로 인근에 특수학급 설치교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학생의 적성, 능력, 학생 의견, 보호자 및 특수교사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일반학급 배치가 좋다.’라고 생각되면 특수학급이 없더라도 특성화고로 배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이의신청서에 적었습니다.
이 밖에도 특수교육법 제25조 1항에는 ‘일반학급으로 배치받은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해 순회교육을 실시한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일반학급으로 배치받아도 충분히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파견된 특수교사의 도움으로 필요한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제36조 2항에는 ‘배치되고 난 후 3개월 이상 학교생활에 심각한 부적응이 발생할 경우에는 재배치를 신청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얼마든지 특성화고로 진학한 후 심각한 부적응이 발생할 경우에는 다시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계고로 재배치 신청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지적장애라는 이유로 아얘 처음부터 진학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명백한 특수교육법 위반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들을 상세하게 이의신청서에 적었습니다. 지적장애 학생을 한번도 일반학급으로 배치한 선례가 없다고 하여 일반학급으로 배치를 해주지 않는 것은 명백한 장애학생 차별입니다. 또한 인문계고등학교 일반학급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특성화고등학교까지 입학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분명한 특수교육법 위반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이러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더 똑같은 내용으로 이의신청을 했지만 역시 ‘지적장애 학생은 특수학급이 없는 곳으로 배치한 적이 없다.’는 선례와 특수교육운영위원회에서 객관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했다는 내용만 반복하며 또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단지 2지망인 일반계고로 배치 결정을 바꿔줬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교육청의 이러한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와, 장애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태도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수교육운영위원회 위원들은 재성이와 면담을 해본 적도 없고 학부모 또는 특수교사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겉으로 드러난 검사 결과지와, 내부 지침으로 정한 기존의 선례를 깨뜨릴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일반학급 배치가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일반학급으로 배치를 해주고 법에 규정된대로 순회교육을 강화하거나 적응에 문제가 보일 경우 다시 재배치 신청을 하면 되는 것인데도, 도교육청은 아무런 타당한 이유도 없이 선례를 만들기 싫다는 이유로 재성이의 특성화고 배치를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인권과 학습권 선택을 보장해야 할 도교육청 특수교육과와 특수교육운영위원회는 오히려 법을 위반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장애의 정도나 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지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일반계고로 배치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의견 진술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도교육청에서는 해를 넘겨 1월에 다시 한번 소명의 기회를 줄테니 부모님보러 지정된 장소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추운 1월 어느 날, 어머님을 모시고 수원에 있는 지정된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특수교육운영위원회 위원들이 다 모여있었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소명서를 읽어내려가며 어머니는 재성이를 특성화고로 보내달라고 머리를 숙이며 부탁하셨습니다. 위원들은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딱 한마디, ”정말 재성이가 특성화고로 가고 싶어하나요?“라고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네“라고 대답하였고 그걸로 금방 면담은 종료되었습니다.
저는 추운 겨울에 일방적으로 먼 곳으로 오라고 한 도교육청의 업무 태도나 어머님께 대하는 위원들의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런 소명 기회를 통해서 재성이가 원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재성이가 그 고등학교에 가고 싶냐고 물어보았을 때, ‘아 이제는 재성이가 특성화고로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며칠 후 학교로 날아온 공문에는 ‘특성화고등학교로의 재배치 기각 결정’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특수교육대상자의 선정・배치를 결정하는 특수교육운영위원들께 한 가지만 묻고 싶었습니다. 특수교육운영위원들이 장애 자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과연 이렇게 자기 자식을 자식의 뜻, 부모의 뜻, 교사의 뜻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배치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먼 곳까지 오게 했으면서, 정당한 이유도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계속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재성이와 부모님은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약간 장애가 있으신 어머님과 택배 일을 하시는 아버님은 제게 전적으로 의지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협조를 받아 결국 행정심판을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행정심판은 결정나기까지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일이었고 재성이는 이미 근처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여가 지나 재성이네 집에 전화해 보았습니다. 재성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는 있지만, 특수학급에 적응하지 못해 통합학급에서만 수업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특수교사가 내려오라고 해도 안 내려오고, 거의 특수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재성이는 학교가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재성이가 잘 적응하며 다니기를 바랬지만, 아무리 특수학급이 있고 특수교사가 있어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행정심판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아직도 빨라야 한 달 이상 걸린다기에 저는 민원을 넣어 재성이의 현재 상태를 알리고, 이제라도 다시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열어 일반계고 담임교사와 특수교사, 부모님의 의견을 청취하고 재성이의 학교 배치에 대해 다시 심의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장학사님 두 분이 오셔서 일반계고 담임교사, 특수교사와 면담을 하였고, 우리 학교로도 오셔서 저의 의견을 청취하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재성이가 특성화고 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고 재성이도 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며칠 후, 드디어 재성이를 특성화고로 재배치하겠다는 공문이 왔고 재성이는 2학기 시작과 함께 특성화고로 재배치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재성이와 재성이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진작 이렇게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왜 이렇게 시간을 끌었을까... 작은 제도 하나 바꾸기가 이렇게 힘든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청의 관료주의 문화와 보수적인 가치관, 유연성 없는 사고 방식 등이 재성이를 혼란스럽게 하고 시행착오를 겪게 하였지만, 교육청의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요즘 추세를 보면 장애학생의 취업기회 확대를 위해 부모님이 자녀를 특성화고로 진학시키려는 요구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재성이가 재배치된 특성화고도 과거부터 쭉 이 학교로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나 특수학급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배치가 안 되고 주변 일반계고로만 배치를 받아 그 일반계고의 심각한 과밀현상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수년째 특성화고에 특수학급 신설이 안 되어 주변 일반계고에 학생들이 몰리면 교육청에서는 먼저 선제적으로 그 특성화고에 특수학급 설치를 심각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공문을 보내 그 특성화고에 특수학급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해 보았지만, 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그 특성화고가 사립이라 한계가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또한 특수학급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학부모 동의 연명부와 특성화고에서 먼저 요청이 들어와야 특수학급 설치를 검토해 볼 수 있다고만 답변하였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의 이러한 해명은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행정이 아닌, 전형적인 행정을 위한 행정에 불과합니다. 사립학교 역시 엄연히 교육청의 관리・감독을 받는 교육기관입니다. 주변 일반계고의 심각한 과밀현상이 지속되면 당연히 교육청에서 먼저 특성화고에 특수학급 설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성화고에서 아무런 요청이 없다라고 하여 설치 검토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특수교육대상학생 교육 정상화에 위배되는 행동입니다. 사립인 그 특성화고는 없어도 그만인 특수학급을 당연히 먼저 설치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육청의 떠넘기식 행정은 그만 멈춰져야 합니다.
또한 예산문제로 특수학급 신・증설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일단 특수교사 배치와 빈 공간 하나만 확보되면 되는 것입니다. 특수학급 설치 기준에 맞춰 처음부터 예산이 내려오면 물론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선 빈 공간만 확보되고 돌봐줄 교사가 확보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이지 예산은 차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성화고로 전학 간 재성이는 다행히 씩씩하게 잘 적응하며 즐겁게 학교에 다녔습니다. 가끔씩 전화해서 물어보면 일반계고 다닐 때보다 더 재밌고 즐겁다고 했습니다. 특수학급이 없어서 내심 저도 걱정했었는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다닌다고 하니 저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특성화고에서 너무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 재성이가 졸업할 때까지 끝까지 챙겨주시고 주말마다 교회에도 데려가 주시고 재성이의 모든 것을 친자식처럼 보살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선생님은 김용길 선생님이십니다. 재성이가 학교에서 가끔 사고를 쳐도 항상 앞에 나서서 해결해 주시고 졸업할 때까지 많은 관심과 정성을 쏟아주셨습니다. 김용길 선생님 덕분에 재성이는 고등학교 과정도 무사히 잘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열 명의 일반교사보다 한 명의 특수교사가 나을 수도 있지만, 때론 열 명의 특수교사보다 한 명의 일반교사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아이의 행동 지도와 정서적 안정을 위해 우리 특수교사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반교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학교에 특수교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시는 선생님이 있느냐입니다.
힘들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다그치고, 못 한다는 이유로 혼낸 지난 날들을 반성하며, 나는 오늘도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인가 자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