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창의적으로 키우는 방법 1
창의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생활 습관
by 더불어 사는 사회 Nov 12. 2020
대학교 4학년 올라가기 전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새로 들어갈 하숙집을 구했는데, 하숙생만 달랑 3명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세들어 사시는 조그만 별채 하숙집이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본채에서 큰 하숙집을 운영하시고 별채는 조그만 집에 우리들만 있었던 거라 우리는 밥먹을 땐 본채에 가서 먹어야 했지요.
그때 옆방에 같은 학번 신문방송학과 친구가 먼저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 인사를 나누니 같은 학번에 같은 졸업반이라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충남 대천이 고향이고 공주사대부고를 졸업하였다고 했습니다. 대천해수욕장이 좋다고 방학 때 한번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고향이 춘천인데 저도 친구에게 방학 때 춘천 한번 오라고 했습니다.
새로 구한 하숙집 방은 큰 방을 개조해서 둘로 나눈 거라 방음이 전혀 안되어 그 친구가 조그만 소리만 내어도 고시원처럼 잘 들리곤 했습니다. 물론 제가 내는 소리도 그 친구는 잘 들었겠지요.
그 친구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말수가 적었는데, 신기하게 옷과 패션은 아주 특출(?)나게 입고 다녔습니다. 직접 디자인해 입은 옷처럼 독특한 의상이 많았고 귀걸이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도 하고 다녔습니다.
2000년. 그 당시 제 관점에서는 보통 날라리들이 그런 옷차림과 액세서리를 하고 다닐 텐데,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인 친구가 그런 행색(?)을 하고 다니니 제 기준에서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 가치관은 ‘범생이 같은 친구들은 옷도 얌전하게 입는다.’였는데, 매우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하고 다니길래 그 당시엔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졸업반이었던 우리는 주로 진로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 친구는 신방과여서 졸업하면 신문사 기자나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언론고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방송국 들어가기가 힘든 현실이어서 겉으로는 "그래 넌 잘할 거야 꼭 잘 되길 바란다." 이렇게 격려를 했지만, 미안하게도 속으로는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과연 잘 될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었지요.
그 친구는 밤에 과 친구들을 데려와서 스터디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마다 신문기사 스크랩 해 온 걸로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열띤 토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방음이 잘 안 되니 조그맣게 말해도 주의를 집중하면 잘 들렸거든요.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우리는 졸업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방송국 시험은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너는 열심히 하고 성실하니 1년만 더 하면 꼭 붙을 거야. 힘내라.”라고 위로했습니다.
그 후 저는 대학원 진학하느라 방을 옮기고 그 친구도 다른 곳으로 방을 옮겼습니다. 그리고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습니다.
헤어지고 2~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어, 누구지?' 한참을 생각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친군데 누군지 언뜻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나와서 상을 받고 있었는데 무한도전 멤버들하고 같이 있더라구요. 그때 알았지요. 유명한 무한도전 pd가 되었다는 사실을요. pd가 된지 2~3년이 지나고서야 이렇게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사람은 선입견을 가지고 보면 안 된다는 것과, 창의성은 아이디어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옷차림이나 평소의 행동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친구와의 추억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의 옷차림과 행동, 밤에 나누던 많은 얘기들이 다시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했던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은 옷도 정숙하게 입고 다니고 액세서리도 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은 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방송사에 들어가려고 하는 친구에게 그런 독특한 옷차림은 나중에 방송사에 들어가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원천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었습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무한도전은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생각, 창의적인 시도로 아주 오랫동안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었으며, 태호는 리얼 예능을 최초로 시도한 개척자로 평가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