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사 에세이
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졸업시킨 제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찾아간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특별히 정이 가는 아이들은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데, 그 중 몇 명의 학생들한테는 졸업한다는 말을 듣고 졸업식에 찾아가게 된 것이지요.
6년전 한 중학교에 근무할 때 동건(가명)이란 학생이 있었습니다. 키가 또래보다 조금 작고 왜소했지만 착하고 성실하여 3년 내내 선생님들한테서 이쁨받는 학생이었지요.
어느 날 수업시간에 동건이를 포함한 도움반 학생들을 다 데리고 동건이네 집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밖에서 체육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동건이네 집이 학교 근처인 것을 알고 “동건아, 우리 너희집 한번 가서 놀까? 조금만 있다 올 테니 구경 좀 시켜주라.”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반은 진담이면서 반은 장남삼아 불어본 것이었어요. 전 동건이 부모님이 맞벌이하고 계셨기에 낮에는 집에 안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사실은 옛날부터 동건이네 집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 말에 신나하며 어서 가자고 재촉하였습니다. 동건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네, 그래요 샘”이라며 선뜻 동의하였습니다. 동건이는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집을 공개하는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을 사들고, 5분도 채 걸어가지 않아 동건이네 집이 나왔습니다.
동건이네 집은 다가구 주택 1층이었습니다. 집은 조그맣고 아담했으며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에는 ‘아, 이런 환경에서 동건이가 이렇게 꿋꿋하게 잘 다니고 있었구나.’라는 혼자만의 측은지심의 들었습니다. 타지에서 돈을 버시는 아버님과 간호사로 아침 일찍부터 근무하시는 어머님을 떠올리며 동건이를 바라보니 괜히 미안해지며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우리는 거실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 학교에서 하는 일상적인 얘기들이었지만 동건이네 집에서 하니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동건이의 가족과 가정환경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다 왔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집에 초대한 순수한 동건이가 참 고맙고, 졸업하고 나서도 취직도 잘 되고 모든 게 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나 그래도 말씀은 하고 오시지...먹을 것도 없고 지저분했을텐데 어째요?” 하시길래, “어휴 어머님 아닙니다. 어머님 고생 많으시죠? 제가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찾아가게 되어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집은 저희집 보다 훨씬 깨끗하던데요. 행복이 넘쳐 보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한 시간 동안의 방문이 그냥 이것저것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동건이는 3학년까지 잘 마치고 주변 고등학교로 진급하였습니다. 저는 다른 도시로 전근을 오게 되었구요.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동건이는 아주 가끔씩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저도 동건이 하면 그때 가정방문 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애틋하게 정이 갔습니다. 동건이는 역시나 예상대로 고등학교를 씩씩하게 잘 다녔고,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혼자서 밥도 잘 챙겨 먹으며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가끔씩 통화하며 힘든 거 있냐고 물어봐도 동건이는 언제나 다 좋다고만 대답했습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동건이가 참 기특했습니다.
그렇게 또 3년 가까이 흐르고 어느날 동건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동건이는 방학이라 복지관만 다니며 잘 지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동건이가 졸업할 때가 되었길래 언제 졸업하냐고 물었더니, 1월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한 달 정도 남은 상황이었지요.
전 속으로 깜짝 찾아가면 좋겠다 싶어 “그래 동건아 졸업 정말 축하한다! 벌써 고등학교도 졸업하는구나. 시간 참 빠르다 그치?” “네 샘, 정말 금방이예요.” “동건아 졸업식 잘 하고, 졸업하면 밥 한번 사줄테니 또 보자.” 이렇게만 말하고 끊었습니다.
졸업식 날 몰래 찾아가면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동건이 졸업식 날이 되어 저는 제 아이들과 함께 꽃을 사 들고 졸업식장에 갔습니다. 복도에는 벌써 부모님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동건이네 반에 다다라서 저는 먼저 복도에 어머님이 계시나 찾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바로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3년이 흘렀지만 어머님의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동건이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어머님은 조금 당황하시며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시길래, “아~ 전 동건이 중학교때 특수교사입니다. 당황하셨지요? 며칠 전에 동건이한테서 연락받고 졸업한다고 하길래 찾아왔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님은 저를 알아보시고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옆에 계신 아버님과는 그때 처음 인사드렸습니다.
어머님은 그동안 동건이가 저와 연락하며 지냈던 사실을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더 깜짝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님은 예전처럼 간호사 일을 하고 계셨고, 집도 예전 집 그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동건이의 졸업 후 진로를 물어보니, 전공과에 지원했었는데 안 되어 복지관 일자리 프로그램을 이용한다고 하셨습니다. 전공과에 붙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복지관이라도 되었으니 다행이었습니다.
복도 창문을 통해 보니 교실을 들여다보니 동건이는 키가 훌쩍 자라있었습니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어른보다는 소년에 가까웠었는데 이제는 키가 저보다 커졌습니다. 잠시 교실 안으로 들어가 동건이와 인사를 했습니다. 동건이 역시 깜짝 놀랐습니다. “어 샘, 어떻게 오셨어요?” “마침 시간이 나길래 왔어. 졸업 축하한다 동건아~” “고맙습니다.”
동건이의 깜짝 놀라는 표정이 귀여웠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가족들과 교실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머님은 연신 감사해 하셨지만, 제가 오히려 동건이를 만난 것이 큰 복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동건이는 선생님이 올지 몰랐다고,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동건아 정식으로 취직하면 밥 한번 사라. 기대할게” 농담으로 말하자 동건이가 웃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졸업식이었지만 중학교를 졸업한 제자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처음 다녀왔던 거라 지금도 그때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동건이는 복지관에서 교육 이수 후 우체국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편물 분류하는 작업을 직원분을 도와서 같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동건이는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이 힘들지는 않냐고 물어보니 재밌다고만 합니다. 돈도 벌 수 있어 뿌듯하다고 대답합니다.
역시 긍정 마인드를 가진 동건이입니다.
동건이가 앞으로도 재밌고 즐겁게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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