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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May 09. 2022

우울증 일기 64. 생존


내 인생은 앞부분이 찢겨져 나간 망가진 책 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러나 끝내 꺾이지 않고 살아남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책’이었던 거라고.. 이제 전 우울증을 앓았던 과거의 시간과 경험들까지 모두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를 띄우는 법, 오렌지나무 지음 


그동안 내가 원했던 것은 우울증을 빨리 떨쳐버리는 일이었다. 극심한 우울이 잦아들고, 나의 인생을 잘 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떄쯤 '우울증을 앓았던 지난 과거'는 나에게 짐짝처럼 느껴졌다. 위에 인용한 문구처럼 우울증을 앓았던 기간은 찢겨져나간 페이지 같았고 암흑기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느꼈고, 성과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결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하필 내가 우울증이 걸려서..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난 잘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다고 과거를 계속해서 뒤돌아보며 무언가를 원망하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교통사고를 당했다' 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교통사고는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인생에 있어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리고 나의 과실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 병은 교통사고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어쩔 수 없었던 일. 어쩔 수  없게 맞이한 불행한 일. 

하지만 이렇게 나를 다독거려봤자 불행함은 가시지 않았다. 가장 빛나고 열심히 했다고들 말하는 대학생 신입생 시절부터 빛나는 20대 전반을 우울증을 겪으면서 보냈다.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다. 엉엉 울면서 학교를 다녔고 회사를 다녔다. 하교하고, 퇴근하고 오는 버스에서 사람들이 보던 말던 훌쩍거렸다. 저녁에는 밀려오는 우울감에서 도망가기 위해 잊어버리기 위해 무언가를 꾸역꾸역 먹어댔다. 그렇게 20대를 보냈다.그걸 생각하면 나의 20대는 깜깜했고 불행했고 우울했다. 


하지만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를 띄우는 법' 이 책에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울증을 겪던 시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니라고. 처절하게 우울증과 싸워왔던 것들이라고. 그제야 나는 꺠달았다. 지난 1년간 내가 이 브런치에 짤막하게, 대충 휘갈겨 쓴 글들은 전부 그 싸움의 흔적이었다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정리도 안된 채로 적어내려가던 문장 하나하나가 내가 고군분투한 흔적이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니라 나는 열심히 싸워 왔다고. 그 시간을 쓸모 없었다고 여긴 것이 잘못 됐다. 


나는 살아왔다. 비록 순탄하거나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나는 나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 남았다. 넘실대는 우울의 감정과 삶의 무의미함, 무기력을 이겨내고 꾸역꾸역 살아왔다.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가며 잠시의 아픔을 달래는 방법을 선택했더라도. 나는 살아남기 위해 먹은 것이다. 살기 싫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다. 정말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지 않아서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임시방편을 선택해서 하루하루를 버텼던 거다.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남들이 튼튼한 두 다리로 달릴 떄 나는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만큼은 내가 아팠고, 그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주어야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나에게 우울증을 앓았던 경험은 숨겨야하고 지워버려야할 경험이 아니다.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삶이 주는 행복이 어떤 건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벅찬 일인지, 감사한 일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나는 비관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날 수 있고 삼시세끼 잘 먹고 잠을 잘 잤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건지 몰랐을 것이다. 


잘 살아왔다. 수고했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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