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답이 아니다
자존감이라는 건 어떤 풍선과 같은 것이라고 상상한다.
외모에 대해서 자존감이 낮아졌지만 난 그대로 있지 않았다.
무의식 중으로 다른 것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공부’였다.
등수란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외모보다 더 확실한 기준이다. 게다가 ‘1등’ 그 말 자체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상도 뒤따라온다.
나는 외모가 떨어져도 ‘1등’의 자리에 앉게 된다면 가치 있는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으로 남들만큼, 아니 남들보다 가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성적, 등수 밖에 없었다.
난 늘 “공부 잘하니까 쓸모 있는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이제와서 그때 추구했던 것이 진짜 자존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조건부가 이니다. '내가 ~라면 나를 사랑할텐데.' 가 아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데 있어서 조건이 붙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청소를 잘하기 때문에, 내가 공부를 잘하기 떄문에, 내가 예쁘기 때문에 가치 있어 라는 생각은
진정한 자존감이 아니라 오히려 내 자존감을 갉아 먹는 암덩어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인 줄 알고 착각하고 이를 내버려둔다.
특히 이미 예쁜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고 ,계속해서 성형강박에 시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모두 조건부이기 떄문이다. '내가 예쁘니까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는거야.' 라는 말은 곧
'내가 예쁘지 않다면, 사람들이 싫어할거야.'가 되어 버린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내가 예쁘니까'라고 설정해버리면 항상 불안이란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이를 가짜 자존감이라고 부른다.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들에서 '칭찬을 많이 받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이는 무조건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건 가짜 자존감이다.
칭찬은 때로는 가짜 자존감을 만든다.
'너는 공부를 잘하니깐 좋은 아이구나.' 와 같은 칭찬은 가짜 자존감을 만들기 딱 좋다.
너가 ~이니깐 넌 가치가 있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면 아이는 불안하다.
성적이 좋지 못하면 사랑 받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정말 중요한 건 '너이기 떄문에 가치가 있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