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나는 중학교 마지막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다. 300명 가량 되는 학생들 중에서 전교 1등이었다.
물론 내가 매 시험마다 1등을 차지한 건 아니었다. 보통 10등, 9등 이런 등수를 얻었는데 학기말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한 것이다.
그렇게 칭찬을 할 줄 모르던 엄마도 전교 1등이란 등수에는 어깨를 으쓱한 것 같았다. 친척들은 내가 공부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치솟아 올라가는 나의 가치에 우쭐해졌다.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고, 나보다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을 은연 중에 깔보는 게 있었다. 예쁘고 날씬한 아이들을 보면, 나는 으레 '괜찮아. 내가 성적이 높아.' 이런 식으로 자기 위로 해댔다. 대체 그게 무슨 연관성이람.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자존감이 결여되는 부분은 어떻게 해서든 성적과 등수라는 가짜 자존감으로 메꾸려들었다. 등수가 방패막이라도 되는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늘 전교에서 상위권을 차지 하던 옆반 친구를 보게 됐다. 마지막 1등은 나에게 빼앗겨 내심 그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런데, 왠 걸. 그 아이에게 있어서 그 성적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아이는 이번에 1등을 하지 못했더라도, 그 1등이 내가 했더라도 불행해하거나 울거나 침울해하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성적은 그저 공부했던 결과였지 맹목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가 아니었다. 그 친구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했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재밌는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난 시험과 등수가 내 삶의 전부이고 목적인것처럼 살았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그저 과정이라니!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 낙담했다. 물론 그녀 나름의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등수가 높다고 그녀가 나를 우러러 보는 것도 아니었고 나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학교를 선택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더욱더 허무해졌다.
나는 3년 동안 내가 좇아왔던 것이 허상이라는 걸 느꼈다. 더 이상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가 공부를 왜 하는지, 성적이 왜 중요한지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때는 어쩜 그렇게 학습시간을 철저히 지켰고 숙제도 미리미리 다했고 수행평가도 다했는데, 고등학교 올라간 나는 더 이상 집중하지 못했다. 공부도 하기 싫고 숙제도 미루다가 허겁지겁 했다. 중학교 때는 한달 전에 미리 시험 공부 계획을 세워 진도에 맞춰 공부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벼락치기가 일쑤였다. 자습시간에 문제집을 볼 힘이 생겨나지 않았다. 대신 책을 읽고 나는 왜 사는지 고민했으며 집에가서는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가치, 잣대가 부러졌다. 그 부러진 잣대 속에서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