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원인
09. 우울증의 원인
생각해보면 나는 태어날때부터 우울하기만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는 “소젖을 먹고 자라서 그런가 예민하네.” 라는 말을 곧잘 했다. 엄마기준에서 난 늘 예민한 아이였다.
그래도 예민했으면 예민했지, 처음부터 우울했던 것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칭찬 받기 좋아했고 공부에 애살이 많은 아이였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곧잘 어울리고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을 사귀며 맨날 놀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쯤 나는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숙제도 깔끔하게 끝낸 다음 놀러 나갔다. 신나게 놀고 난 후에 저녁밥을 먹었고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공부가 싫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했고 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애들이랑도 재밌게 놀았다. 내 기억으로 그때까지는 ‘우울’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친구들과 싸웠다던가 쪽지시험 점수가 안좋다던가 놀림 받았다던가 이런 안좋은 일들이 종종 있어 화가 나거나 슬픔이 찾아오곤 했지만, 그렇다고 매일이 불행하거나 삶을 놓아버리거나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난 대체 언제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걸까.
나는 부모의 이혼을 겪고서, 전학을 오게 됐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 어려운 가정형편들이 내 마음을 조금씩 갉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웠고, 무서웠으며 그 두려움과 무서움에서 피하고 싶었다.
피하기 위해 마련한 나의 대책은 ‘최악의 상황 가정하기’였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리 안좋은 일이라도 예상을 했던 것이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무엇을 다룰 수 있는 것마냥 다루었던 것마냥 착각하게 만든 것 같았다.
내 인생에 나타나는 돌부리들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알고 있었던것마냥 굴었다.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그러다보니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나버렸다.
그래도 그때까지 하루가 끔찍하다거나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외로움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새롭고 낯선 환경이 당혹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삶을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든건 아니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놀이터에 다시 나갔고, 공부를 곧잘 했고 좋은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 왜 그런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졸업식 내 앨범에는 가족과 찍은 사진만 있을 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없었다. 어울리기는 어울렸는데 진짜 친한 느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어중간한 시기에 전학을 와서 그랬던걸까. 아니면 내 어떤 태도가 아이들과 유대관계를 쌓기 어려웠던 걸까. 나는 마음 한 켠에 어울리지 못했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것이 외로움으로 자리 잡았다.
중학교 때의 나는 더욱 마음이 급했다. 공부할 내용은 많아졌고 어려웠으며, 한편으로 친구들을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내 마음속의 외로움을 무시해버리고 공부를 선택했다. 공부는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쉬운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늘 공부만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밥같이 먹으러 다닐 한 두명과만 얕은 관계를 유지했다. 주말에 친구랑 놀러가는 것도 없었다. 따로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중학교 3년 내내 중간기말고사에 매달렸고,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않고 학교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꿈에도 그리던 전교 1등을 했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 전교1등을 놓친 그 친구는 친구가 많이 있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얹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혼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걔는 평균적인 성적도 좋았고, 친구도 충분히 있었다. 나는 친구도 없었고 아무런 미래도 없는데. 난 외롭고 후회스럽기 시작했다.
난, 외로웠다. 너무나 외로웠다.
지금생각해보면, 그것이 내 병의 신호였던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소통하려 하지 않고 부끄럽게 여기고 나약하게만 여겼다. 그렇게 나와 나 자신은 소통하지 못한 채 상처는 짙어져만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