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자존감
자존감 훈련기 06. 상처
나는 상처 받았다.
전편에 구구절절 늘어 놓은 얘기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나는 상처 받은 적이 있다'다.
사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 터무니 없는 것으로 놀림 당하곤 한다. 얼굴이 조금만 길어도, 눈이 조금만 작아도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놀림 당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놀림 당한 사람은 전부 자존감이 낮은걸까?
아니면 상처의 경중에 따라 자존감이 높고 낮아지는 걸까?
둘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상처가 났을 때 그 치료다.
피부의 표면이 사람마다 다르다.
햇볕을 쬐고 있을 때 누군가는 구릿빛으로 타기도 하고. 누군가는 기미와 주근깨가 올라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피부 표면이 얇아서 햇볕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살갗이 벌겋게 달아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똑같이 칼에 베였다고 하더라도 누구는 깊게, 누구는 얕게 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제각각 그 두께가 다른 피부처럼 마음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깟 일 하나 이겨내지 못해?' 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마음 피부가 얕을 수도 있는 거니깐.
그런데 이상하다.
보통 화상을 입은 피부를 향해 “왜 이렇게 피부가 약하냐?”고 피부를 다그치진 않는다. 그 피부를 탓하더라도 이미 그 따끔거리는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피부의 열을 식히고, 손상된 곳에 약을 발라주는 것이다. 그리고 피부가 약하다면 다음부터는 좀 더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피부의 상처는 그러면서, 마음의 상처는 어찌 그러지 못하는 걸까?
마음이 다쳤다면 그 마음의 표면의 강도를 탓하기 전에 먼저 치료부터 해야 한다.
상처 받은 마음에 따뜻한 말로 진정시켜주고, 사랑으로 약을 발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 마음의 부위는 약한 부분이니깐. 다음번에는 조심하자.” 라고 말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건 무리다. 어린아이가 '어, 팔에 상처가 낫군. 알코올로 소독한 후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줘야겠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낫는지 모르는 게 일반이고, 모르다보니 그저 통증에 우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어린아이는 그렇다. 그래서 나도 그랬다. 그러면 보통 보호자, 혹은 양육자가 '무슨 일이냐?'며 달려오고 상처 난 자리를 확인하고 치료를 해준다.
중요한 건 난 그 치료가 없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나에게 '네가 놀림 받은 이유는 네가 뚱뚱해서다.'라는 무심한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것은 나의 존재자체가 부정당하는 일이었고, 약을 발라야할 곳에 소금을 뿌린 택이었다.
지금에 와서 엄마는 그때는 강하게 키우려고 그런거라고 하지만. 그때의 난 내 상처난 자리를 빨리 보듬어 주지 못한 채 상처난 게 오히려 내 탓이 되어버련 상황을 겪어내야 했다.
상처 난 것도 내 잘못인 셈이었다. 내 잘못만 남았다.
나는 결국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한 채.
그리고 상처가 생기더라도 치료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