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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Dec 09. 2020

[전시/샌프란시스코]
드영뮤지엄 - 프리다 칼로 전시


'보이는 것은 기만적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드영뮤지엄에서 진행중인 프리다 칼로의 전시 제목은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프리다 칼로의 화려한 외모와 다이내믹한 인생 등 보이는 것으로 현혹하면서도 동시에 보이는 것 그 이면의 아픔과 상처,고뇌를 들여다보도록 안내한다.

COVID-19으로 연기된 전시는 2020.09.25부터 2021.02.07까지 진행되고 있다.


전시는 프리다 칼로의 뿌리로부터 시작한다. 스페인 혈통의 멕시코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어머니의 사진과 사진을 즐겨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통해 그녀의 주체적, 예술적 자아의 뿌리를 두고 있는 듯 보인다. 


모계 사회였던 멕시코 테우아나(Teuana) 지역의 전통 의상은 멕시코 전통에 대한 자부심 등 여러가지 이유로 프리다 칼로가 평생 즐겨입은 의상이 되었고 그와 짝을 이루는 화려한 꽃의 머리 장식은 프리다 칼로의 겉모습을 규정하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다소 어두운 면이 있었다.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보철 기구를 달고 살아야했던 프리다 칼로, 17세의 나이에 버스 사고로 척추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회반죽으로 만든 깁스를 착용해야했던 프리다 칼로에게 긴 치마와 넉넉한 자수 블라우스로 이루어진 테우아나의 전통 의상은 상처를 가릴 수 있는 완벽한 의상이 되어주었다. 


멕시코 독재 정권에 맞서 혁명의 중심에 섰던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세번째 아내가 된 프리다 칼로에게 디에고 리베라의 존재는 기쁨과 슬픔의 원천으로 자리했다. 그에 대한 사랑은 넘치다 못해 한껏 부풀어오르기만 할 뿐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기에 언제나 아프고 씁쓸한 것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의 대부분을 자화상이 차지하고 그마저도 처절하고 상처입은 모습인 것은 상당 부분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사랑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프리다 칼로 자신도 수많은 상대와염문을 뿌리고 긴밀한 관계를 맺긴 했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닌 수단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강인한 인상 너머 풍기는 상처 가득한 내면 때문이다. 평생 짊어져야만 했던 육체의 상처는 물론이고 응답없는 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그러나 프리다 칼로가 자아를 찾아 고군분투하고 온갖 편견에 맞서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디에고 리베라의 액세서리 같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아내로 관심을 끌었지만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는 강인하고 화려한 겉모습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거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녀의 단호한 의지는 수많은 도구와 외부의 충격으로 상처를 입을지언정 그것을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되어 예술혼으로 피어났다. 그녀의 그림 '두 명의 프리다' 나 자아가 투사된 애완 동물을 함께 그린 자화상 등은 그녀의 결코 단순하다고 할 수 없는 굴곡진 삶을 살아오면서 형성된 복잡한 자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의상, 개인 유품 외에도 전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사진 작가 니콜라스 머레이는 프리다 칼로라는 인물과 그녀의 삶을 모두 사랑한 사람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초상화 속 그녀의 모습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아름답고 당당하고 밝은 프리다 칼로의 모습은 자신이 보는 모습과 남이 보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드영뮤지엄이 프리다 칼로 전시를 기념하여 출간한 책의 표지

프리다 칼로가 처음으로 방문한 미국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떠오르는 멕시칸 르네상스의 핵심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에게 벽화를 의뢰한 북미 도시의 하나였다.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렸던 프리다 칼로에게도 샌프란시스코는 의미있는 장소였다. 


드영 뮤지엄의 이번 전시는 프리다 칼로의 사후 50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프리다 칼로의 개인 유품들 - 의상, 장신구, 보조장치 등 -을 미국 서부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녀의 삶과 예술을 아우르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올림머리의 화려한 꽃 장식과 다채로운 색상의 전통 의상을 왜 입었는지, 하나로 연결된 짙은 눈썹과 콧수염, 발그레한 볼터치와 붉은 입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체적 장애와 사랑의 상처는 어떻게 극복이 되었는지, 프리다 칼로의 공산주의적인 정치성향은 그녀의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무엇보다도 프리다 칼로의 복잡한 자아는 어떠한 예술적 형태로 나타나는지 등이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기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프리다 칼로의 전시.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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