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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Dec 30. 2020

어둠 속 빛을 찾아

[넷플릭스 영화 리뷰] '미드나잇 스카이'

2049년,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으로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인류는 땅 속으로 피신을 하지만 이는 단지 임시적일 뿐 지구에서의 삶은 이제 끝이 분명하다. 천문 과학자 어거스틴(조지 클루니)은 지구(북극)에 홀로 남아 지구로의 귀환을 앞둔 우주선에 지구의 멸망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삶을 바치고자 한다. 

어거스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구 밖 광활한 우주의 단 한 곳이라도 인류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존재하리라 보고 그 가능성을 찾아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지구가 멸망하리라 생각해서 우주 밖으로 눈을 돌린 것인지, 단지 탐험가로서 우주로 눈을 돌려 연구에 매진한 것인지 아마도 후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지만 공교롭게도 지구의 종말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탐험 영화가 아닌 디스토피아 영화가 되었다. 



지구에 발을 딛고 있지만 온 마음과 영혼은 오로지 우주를 향하고 있기에 어거스틴은 사랑과 가족을 외면하는 고립과 은둔의 외톨이를 자처한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100%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는 지구가 종말을 맞이한 상황에서 그 자신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 보다는 생명과 존재, 시간과 우주라는 근본적인 대명제가 더욱 중요한 것이었고 따라서 자신의 죽음 보다는 인류의 존재가 계속해서 이어져가도록 하는 일이 마지막 목표일 뿐이다. 끝까지 혼자 남아 마지막 교신을 보내는 일은 그에게는 더없이 적격인 일이었고 이를 위해 최후의 보루로 향하는 여정은 죽음과 삶을 초월하는 필사의 선택이었다. 

그의 여정에 함께 한 아이가 있었으니, 아이리스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는 영화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의 곁을 맴돈다. 자신의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린 아이를 떠안게 되면서 자신은 여자 아이를 돌봐줄 만한 적절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실 아이리스는 돌봐줘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어거스틴의 몸과 마음을 지탱해주며 그의 옆을 지키는 역할에 더 가깝다. 언제나 어거스틴에게 먼저 다가가고 어거스틴의 머리를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그가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온 힘을 다할 용기를 준다. 참고로, 아이리스에 대한 반전은 어거스틴의 삶과 여정을 완결시키는 의미까지 더해지면서 영화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힘을 갖게 된다.


한편, 그가 제시한 우주의 한 별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우주선에는 5명의 성인과 뱃속의 아기까지 6명의 사람이 타고 있다. 좋은 소식을 들고 지구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지구로의 교신은 3주째 먹통이다.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마음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발견했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지구라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 드디어 가족을 만난다는 것에 더 들떠있다. 

서로를 향한 애타는 교신은 마침내 연결이 되고 지구의 종말 소식을 전해 들은 우주선의 우주인들은 결국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생사는 물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가족을 찾아 종말을 맞은 지구로 향하는 두 명의 우주인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자신의 가족과 집이 있는 지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뱃속의 아기를 품고 있는 우주인 커플 남녀는 당연하게도 어거스틴의 경고 덕택에 자신들이 발견한 별로 다시 되돌아가기로 한다. 여자 우주인 설리(펠리시티 존스)는 어거스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마지막 교신이 끊어지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조용하고 느리며 지루한 영화일 수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결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지구의 종말을 알려주며 어거스틴은 'I'm sorry'라고 말한다. 이 말이 가진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만으로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다. 

우선, 어거스틴은 지구를 지키지 못한 것이 객관적으로 안타까웠을 수 있다. 지구 종말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이러한 소식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말하자면 안타깝고 유감스러울 수 있다.

둘째, 어거스틴은 자신의 삶에 대해 주관적으로 안타까웠을 수 있다. 우주로 눈을 향한 채 지구, 연인, 가족을 소홀히 한 삶이 후회스러울 수 있다. 우주가 아닌 지구를 둘러보고 아꼈다면 어쩌면 어거스틴은 지구도 연인도 잃지 않았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셋째, 어거스틴은 관객에게 경고를 한 것일 수 있다. 지구 멸망의 원인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정황 상 지구는 기후변화로 인해 대기, 기후, 생태계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얼어있던 호수가 녹아 곤혹을 치른다거나 공기의 질이 나빠져 새들이 죽어가고 산소통 없이는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지구를 돌보기는 커녕 지구를 파괴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거스틴의 교신을 들은 뒤 설리는 어거스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까지 남아 교신을 전해준 것,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우주의 별을 발견해준 것, 무엇보다도 보다 더 큰 세계에 대해 영감을 준 것 등. 

다소 모호하고 과묵한 이러한 영화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또한 그것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때 그때 얻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수 많은 생각 중에서도 지금은 왠지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후회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고 그에 대해 감사하고 싶다. 이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처럼, 지구의 종말을 맞은 상황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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