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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Feb 10. 2021

'승리호'의 승리는 더 짜릿해야만 했다

영화 '승리호' 리뷰 

영화 '승리호'가 개봉하자마자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 SF영화로 새로운 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승리호'는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우주선 승리호의 선장과 대원들을 중심으로 지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선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라니 흥미로운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다채로운 인물 구성과 빠져서는 안될 AI 로봇의 등장은 물론이고 망해가는 지구와 새롭게 부상하는 화성 사이의 대비, 이를 둘러싼 음모와 갈등이 엮여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 영화 특유의 정서인 가족애가 이야기의 큰 줄기를 차지하면서 영화는 말그대로 종합 SF 판타지물이 되었습니다. (이후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이 많은 것들을 그럴듯하게 해놓았으니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영화에 수많은 것들을 담아내려다보니 그 중에서 몇가지 아쉬운 점들이 없을 수 없겠지요. 이 글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승리호'의 주인공은 승리호 선장과 대원들 뿐인가? 

'승리호'의 가장 커다란 갈등 구조는 지구를 파괴하고 이를 화성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빌런의 등장으로 나타납니다. 보통 SF의 악당은 나 악당이다하고 등장하는 것에 반해 이 영화의 빌런은 꽤나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구원자 코스프레를 합니다. 아무리 그래봐야 쎄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는 하지만 극 중반 이후에서 그의 정체가 탄로나면서 승리호와 빌런의 대립이 형상화됩니다. 

이러한 계기가 되는 도로시의 등장은 승리호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빌런의 정체 탄로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죠. 더욱 중요한 것은 검은여우단의 등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구를 지키는 환경단체인 검은여우단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구와 화성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조사해왔습니다. 그 와중에 설리반이라는 인물의 정체와 그의 악한 행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구나 변화의 핵심이 되는 도로시의 능력과 역할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러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검은여우단의 등장과 퇴장은 다소 코믹하면서도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맙니다. 승리호 대원들은 모두 생포하고 나머지는 죽이라는 빌런의 명령은 주인공과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을 너무도 손쉽게 갈라놓음으로써 극의 흐름을 끊어버리고 억지스러운 전개를 이끌어나가게 됩니다. 검은여우단의 존재를 더욱 차별화하고 무게감있게 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마음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태호는 왜? 설리반은 왜 그럴까?

인물의 성격과 인물들간의 관계 형성이 다소 평면적이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극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태호(송중기)는 사고로 아이를 잃고난 뒤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우주에 떠돌고 있는 아이의 유해와 유품을 찾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는 인물입니다. 그 와중에 돈이 되는 도로시(박예린)의 등장으로 드디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기회를 찾게 되었죠. 

극의 전개에서 도로시에 대한 태호의 태도는 이해는 가지만 공감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도로시를 폭탄 로봇으로 오인한 것에서는 당연히 도로시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폭탄 로봇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도로시에 대한 거리두기를 지속합니다. 자신의 딸 순이(오지율)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도로시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사그라들게 될까봐 그런 것이겠죠. 반드시 도로시를 돌려보내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만 꽉 차 있습니다. 

도로시에게 얽힌 모든 사실을 알고 도로시를 설리반에게 빼앗긴 뒤에도 일단 돈을 챙겨 순이의 유해와 유품을 찾기 위해 떠나죠. 물론 도로시를 구하기 위해 다시 승리호로 돌아오지만 말입니다. 인물의 성장이 가장 확연해야 할 태호의 변화가 내내 지지부진하다 막판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는 빌런인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의 불행으로 고통을 받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게까지 지구를 싫어하는 이유나 분노가 가득한 이유가 빈약하기만 합니다. 이로 인해 인물의 변화나 대립 구도가 단순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승리호의 승리는 더 짜릿해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후반부의 승리호와 설리반의 대결은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승리호 선장(김태리)의 시원시원한 총격신이나 타이거 박(진선규)의 현란한 몸싸움, 업동이(유해진)의 비상하는 작대기는 볼거리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싱거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상대와의 전투신이나 추격신이 짧고 밋밋했죠. 결국 설리반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대결신은 긴박감이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서 모두가 희생하면서 폭탄을 터뜨리는 설정은 장엄하게 느껴질 만했습니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리호의 선장과 대원들이 모두 살아나면서 이러한 느낌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짜릿한 반전이 아니라 기만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들이 살아난 것이 엄청난 실력이나기지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 예상치도 못한 기적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살아난 이유가 앞에 나왔던 장면을 다시 사용했나 싶을 만큼 뻔한데다 심지어 그들의 생존이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대결장면이 좀더 짜임새있고 스릴있었다면, 그들이 살아야하는 이유와 그들이 살아난 이유가 보다 그릴듯하고 긴장감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훨씬 더 짜릿하고 개운한 결말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부분에도 불구하고 한국 SF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우주선이나 우주 속 장면들은 특히 수준급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고 등장 인물의 캐릭터 형성에 보다 공을 들여 더 나은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승리호2' 기대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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