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할아버지의 끊임없는 사랑 고백
휠체어에 앉아 있는 G할아버지는 귀여운 티셔츠에 편한 바지와 운동화 차림을 하고 있고 그의 손에는 언제나 지역 신문이 들려있다. 할아버지를 처음 본 건 점심 시간 식당에서였다. 홀 안에 있는 사람들과 들고나는 사람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한쪽 구석 식탁에 홀로 앉아 있던 G할아버지는 내가 다가가자 얼굴에 웃음을 띠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여기 직원인가요?" "아니요, 자원봉사 중이에요." "오, 고마워요. 점심은 먹었나요?" "아뇨, 아직이요." "뭐하는 거예요?" "돌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있어요." "오, 미소가 아름다워요." "고맙습니다."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아름다운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하고 있지요. 우리의 결혼은 50년이 되었죠."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반갑게 웃어주고는 바로 플러팅을 한 뒤 난데없이 아내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는 G할아버지의 대화가 다소 뜬금없이 생각되었다. 왠지 다정한 성격인 것은 분명하지만 바람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굉장히 유쾌하고 친절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나서 며칠 뒤 다시 만난 G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네, 안녕하세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난데없이 또 아내에 대한 사랑고백을 늘어놓았다.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아무래도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질문을 던졌다. "아내분은 지금 어디에 계세요?" "아내와는 몇 년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요. 우리의 결혼이 아직 유지 중이라는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야 돼요. 우리는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어요.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졌어요."
이쯤 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G할아버지와 아내분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종합해 볼 때 속으로 드는 생각은 아마도 젊은 시절 바람을 많이 피워서 아내와 이혼을 했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사교적이고 배려가 몸에 배웠으며 칭찬을 서슴없이 하는 할아버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스토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아내에 대한 사랑 고백을 하고 있지만 아내에 대한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서 이런 저런 짐작과 상상을 했다.
G할아버지는 잠시 뒤에 또다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나 똑같은 이야기였다.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우리는 50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했어요. 우리의 결혼이 아직 유지 중이라는 것을 아내에게 알려야해요." 그러자 옆에 있어 보호사가 이제는 G할아버지를 좀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아내분은 돌아가셨어요." 나는 순간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G할아버지는 다소 담담했다. "아, 그래요?" 그러더니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도 그다지 큰 충격을 받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짐작이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과 더불어 섣부른 판단에 대한 나 자신의 반성이 뒤를 따랐다. 나는 할어버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고는 다른 노인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와 또다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G할아버지는 반갑게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러고는 틈을 엿보다 대화를 나눌 기회라도 생기면 또다시 같은 말을 했다.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이쯤되니 아무래도 G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할어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요. 오른쪽 귀는 좀 나은데 그래도 잘 듣지는 못해요, 미안해요."라고 사과를 잊지 않았다. 이 날도 할아버지는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3-4년 동안 연락을 못했어요." "왜요?" "아내가 많이 아파요. 치매에 걸려서 다른 시설에 있어요." 할아버지는 새로운 사실들을 이야기했다. "할어버지의 상태는 어떠세요?" "난 좋아요. 괜찮아요." "아내분을 만나고 싶으세요?" "그럼요, 아내는 4층에 있고 나는 3층에 있어요. 근데 연락이 안돼요."
나는 할아버지가 이야기한 내용 중 어느 정도가 정확한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알 뿐 다른 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또다시 할아버지가 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라 짐작을 했다. 본인의 상태와 헷갈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나는 다른 이야기들도 듣고 싶어 이것저것 물었다. 어린 시절 앨라바마에서 자랐고 학창시절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것, 캘리포니아 해안가에서 내과 의사로 오래 살았다는 것, 그러다 여지없이 아내의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아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함께 아들 둘을 얻었지요." "아내분을 보고 싶으세요?" 그럼요." "아내분에게 갈 수 있어요?"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나는 더 이상 운전을 할 수도 없어요. 내가 운전하는 것에 대해 가족이 반대를 하거든요." "무얼 하고 싶으세요?" "내 아내는 아름답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다른 이야기로 할아버지의 관심을 돌리려 해도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아내 이야기로 돌아왔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1946년 앨라바마에서 태어났어요." "여기에는 얼마나 오래 계셨어요?" "나에게는 더 이상 시간감각이 없어요. 시간은 나에게 어떠한 의미도 갖지 않아요."
할아버지와는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밖에는 정확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간도 의미가 없고 결국 할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아내에 대한 기억과 사랑, 그리움이 전부였다. "아내분을 보고 싶으세요?" "그럼요. 보고 싶지요." 할아버지는 미소를 띠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또다시 아내에 대한 사랑 고백을 하고 싶어서 틈을 엿보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한반복일 뿐 더 이상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앉아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마음 속 깊이는 알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기 싫어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나머지 기억이 거기에서 멈춰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거기에 대고 굳이 사실은 이러저러 하다고 말할 필요나 의미가 있을까.
나중에 G할아버지의 가족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같은 시설에 입원해 계셨고 3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말과 비교해보고는 많은 부분이 정확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비록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다를 뿐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시설에 있었다는 것과 3년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단지 연락이 되지 않는 이유가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대해 으레 의심을 하고 든 것을 또다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한 것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구구절절이 알 수는 없고 과연 그 사랑이 할아버지의 말처럼 온통 장밋빛 뿐이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또다시 의심을 하고 있다니!) 지금 현재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 할아버지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순간 오로지 그것만이 할아버지에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할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해서 사랑고백을 중단하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G할아버지의 사랑고백이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 마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