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울고 웃고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

by 탐구와여정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위치한 치매시설에 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사정이 좋은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보통은 가족 중 하나가 가까이 살아서 자주 들여다보고 종종 함께 외출을 하기도 했다. 보통은 배우자가 돌아가신 경우가 많아 가족이라고 해도 자녀나 형제자매가 주를 이루지만 배우자가 살아있는 경우에는 그 애틋함이 무척이나 대단한 경우가 많았다.

#1

M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점심시간 식당에서였다. 왠지 분위기가 여느 거주자분들과 다르기는 했지만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는 걸로 보아 방문한 가족은 아닐 거라 짐작했다.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잠시 후 할아버지의 테이블에 휠체어를 탄 할머니를 모시고 보호사가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오자 나에게 설명을 했다. "여기는 내 아내야. 치매에 걸려서 이곳에 있지." 그러더니 할머니를 향해 "여보, 점심 먹자. 오늘 얼굴이 아주 좋아보이네." 할머니는 하얗고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무표정했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다정한 말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말은 물론이고 음식도 먹으려는 기세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먹지 않겠다는 듯 음식을 주어도 입을 벌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또다시 혼란스러워졌고 혼자서 지레짐작을 시작했다. '아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진짜 부부가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자신의 아내로 착각하고 이리 행동하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눈빛은 무척이나 따뜻했고 아내에게 건네는 한마디한마디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너무나도 깊은 진심이 느껴졌고 이 모든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2

가장 중증의 거주자가 있는 네이버후드에서 만난 C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중증이어도 언제나 깨어있고 밝게 웃으며 말도 잘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C할머니는 많은 시간 졸고 계시거나 깨어 있어도 무표정에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었다. 어떤 때는 괴롭게 혼자서 울고 계셨는데 어디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속이 상해서 우는 것 같은,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듯한, 회한과 울분의 눈물만 같았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C할머니를 방문한 가족들이 있었다. 남편인 듯한 할아버지와 아들인 듯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편한 소파로 옮기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집에서 가져온 듯한 먹을 것들과 쿠션, 담요 등이 놓여있었다. 할머니는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상태였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말도 걸고 쓰다듬어도 주기도 하면서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해보였지만 왠일인지 가끔씩 가까이 들이미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외면도 하고 다소 무뚝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다음날 만난 C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담요를 쥐어짜고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죽이고 울음을 삼키면서 너무도 애달프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3

E할어버지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걸어다닐 수는 있지만 대화가 되지는 않았다.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웅얼웅얼 말을 해서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가끔씩 옆에 와서 이러저러한 말을 걸어왔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E할아버지는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냈다.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아마도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 같았고 그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화를 냈다. 거실로 정원으로 방으로 식당으로 E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공격적인 성향이 더 강해지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가 더 많아지면서 급기야는 보호사가 내내 옆에 붙어있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E할아버지를 방문하는 가족들은 많았다. 아내가 오기도 했고 딸이 오기도 했다. E할아버지의 방 앞에 있는 선반에는 가족들과 함께 찍은 많은 사진들이 있었다. 그렇게 가족이 올 때면 E할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가족이 방문하면 E할아버지의 상태는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는 계속되는 듯했다. 가족들이 어르고 달래면서 진정시키려 노력은 했지만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내인 할머니는 더 자주 찾아왔고 E할아버지의 손을 간절하게 꼭 붙잡고 할아버지와 함께 어디든 같이 걸어다녔다.


<뒷이야기>

#1

M할어버지의 아내는 몇 달뒤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뒤 함께 시설에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 때쯤 M할아버지 또한 초기 치매 단계 진단을 받게 되어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방에서 초기 치매 거주자들이 지내는 네이버후드로 옮겨야 했다. 할아버지는 방에서 거의 나오지도 않고 활동에도 별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상태가 궁금했다. 가끔씩 마주치기는 했는데 그 때마다 인사를 건네면 잘 받아주기는 했지만 M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반갑게 맞아주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인상이 굉장이 좋고 친절한 모습이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얼굴이 굳어 있고 웃음기도 전혀 없었다. 할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할머니를 돌보면서 기운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고 할머니의 상태를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함께 있기에 그래도 살아갈 이유를 찾았던 듯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M할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웃음도 의미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일까. M할아버지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확인할 수 있는 한편 아내가 세상을 뜬 지금 얼마나 상실감과 슬픔이 클 것인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2

가족이 다녀간 다음날 혼자 울고 있는 C할머니를 보자 마음이 아팠다. 평소에도 울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그 때는 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인생에 대한 뭔가 연민과 애통함이 있는가보다 여겼다. 하지만 가족이 다녀간 다음 그렇게 울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눈물은 가족을 향한 애틋함과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한 아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등이 섞인 울음 같았다. 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그럴 수 없는 처지로 인한 안타까움, 그와 동시에 가족에게 느끼는 서운함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 인해 가족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막상 함께 있을 때 더 따뜻하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와 미안함도 있음에 분명했다. 나는 C할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제 가족이 다녀간 것을 봤어요. 가족과 좋은 시간 보내셨어요?" 할머니는 담요를 더욱 더 세게 부여잡으며 울음을 삼켰다. "알아요. 가족과 함께 하고 싶으신 거. 가족을 사랑하시는 거.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신 거. 다음 번에 가족이 오면 그 때는 꼭 밝게 웃으세요. 가족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꼭 전하세요." 며칠 뒤 C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이마를 맞댄 채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꼭 잡은 두 손을 오래오래 놓지 않았다.

#3

어느날 집에 가려고 현관문으로 향하는데 E할아버지가 현관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E할아버지가 이곳까지 혼자서 나올 수는 없었다. 보통 가족이 함께 있는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E할아버지 옆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나는 다가가서 E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할머니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족이시냐고 물었다. "아, 나는 가족이었지. 더 이상은 아니지만. 전부인이에요. 지금은 친한 친구고요. 우리는 아주 오래동안 함께 하고 알고 지냈어요. 근처에 살아서 이렇게 가끔씩 E를 만나러 와요. E, 우리 어디 다른 데 가볼까요?" 할머니는 E할아버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E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전부인 할머니를 또다시 발견했다. 복도를 황망하게 걷고 있는 E할아버지를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다니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할머니 혼자가 아니라 다른 할아버지가 함께 있었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짐작컨대 할머니의 현재 남편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사랑했고 결혼해 아이도 함께 낳았지만 지금은 각자 새로운 사랑을 찾은 두 사람, 이들은 여전히 남녀간의 사랑은 아니어도 끈끈한 동료애로 묶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에게까지도 그 범위를 확장해 더 큰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어 우정이라고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류애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는 그들의 관계가 새삼 감동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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