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갈 줄 알았던 브뤼셀

이틀 밤을 지새우고 도착한 브뤼셀의 첫날

by 박나린
도시와 도시 사이: 여름, 벨기에 브뤼셀


계획하지 않았던 파리와 오래 머물 예정이었던 암스테르담 사이에서 여행 내내 머물렀던 곳은 벨기에 브뤼셀이다. 나에게 벨기에는 초콜릿 왕국이었고, 그 왕국의 수도가 브뤼셀이라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키는 나라였다. 초콜릿을 좋아하다 못해 하루 세끼를 초콜릿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는 나에게 브뤼셀이 새로운 여행지로 찾아온 일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초콜릿을 배불리 먹을 운명. 살이 찌더라도 다양한 맛있는 초콜릿을 먹을 운명을 나는 잡기로 했다.




두 국가를 입국심사 없이 가로지르는 일은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여권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유럽이 아니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암스테르담에서 벨기에까지 기차로 걸리는 시간이 고작 2시간 정도였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도 4시간이 넘는데 말이다! 마치 한 국가 내에서 도시를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여행을 가는 것처럼 다른 나라를 자유롭게 오가는 유럽인들이 늘 부러웠는데, 지금은 내가 그 시간을 즐긴다. 긴 비행시간도, 입국 심사도, 환전도 필요 없다. 그저 유로스타를 예매하고 가면 된다. 얼마나 단순한가. 만약 내가 유럽 국가의 시민이었다면 매 주말에 다른 나라로 여행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말이다.


기차는 쾌적했다. 여러 여행 후기에서 유로스타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으니 캐리어를 자물쇠로 묶거나, 작은 캐리어라면 좌석에서 들고 있는 편이 낫다고 하던데, 좌석은 캐리어를 들고 있을 정도로 넓지 않았다. 다행히도 기차 내부는 소매치기가 걱정될 정도로 소란스럽지 않았다. 모두 여행객처럼 보였고, 각자의 할 일을 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이야. 너무 과하게 걱정하지 말자.




여기는 영어를 안 써?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표지판을 둘러보지만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영어와 똑같은 알파벳인데 말이다. 모든 표지판이 벨기에의 공용어인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로 적혀 있다. 자기 나라의 말로 표지판을 적는 것이 이상한 일은 절대 아니라지만, 관광 산업으로 먹고사는 이 도시의 표지판들에 영어가 없다는 사실이 다소 당황스러웠다.


믿음직하지 못한 친구인 구글지도에게 의지해서 숙소를 찾아갔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 전 캐리어 보관을 위해 인포메이션을 찾으니, 원한다면 지금 바로 체크인할 수 있다고 한다. 장기 투숙이어서 청소를 빨리 마쳤다고 한다. 이틀 밤을 꼬박 새워 피곤했던 나는 곧바로 진실의 “Great!”을 외치며 방 키를 받았다. 그래도 벨기에에 도착한 첫날인데 부지런하게 움직여야겠지? 그런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푹신해 보이는 침대 위로 풍덩 뛰어들었다. 잠깐 쉬고 움직이자. 앞으로 2주를 여기서 보낼 거니까 도시를 구경할 시간은 많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찍은 창밖 풍경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후 9시에 찍은 창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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