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했던 도시로 기억될 도시
도시와 도시 사이: 여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나에게 유럽은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낯선 대륙이었고, 여행에서 마주한 모든 문화가 새로워서 매 순간이 영감이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의 시간은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세계사 수업 시간에 본 듯한 역사적인 건물들은 찬란했던 그들의 과거로 나를 끌어당겼다. 반항 없이 네덜란드 황금기로 끌려간 나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귀족 여성들이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모습과 활발한 무역으로 신흥 세력으로 우뚝 선 상인들의 우쭐한 태도 사이를 거닐며 당시의 부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느꼈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도시의 지도를 바라봤다. 전공 수업에서 배웠던 계획도시와 친환경 기술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그대로 베껴서 책 밖으로 꺼낸 암스테르담의 전경은 과거의 풍요로움이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게 했다. 나는 어떤 감정이든 과하게 받아들이고, 확대 해석해서 결론을 지어버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암스테르담이란 도시 자체에 반해버려 네덜란드의 부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결론지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암스테르담에서의 첫날에 대해 ‘특색 없는 곳’이라고 판단했다. 여행 첫날에 우연히 들어간 거리는 양쪽에 카페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거리를 가득 채운 건 세련된 패션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좁은 카페 내부를 가득 채우다 못해 길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예쁘다.” 나는 그 길거리에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그런데 뭔가 익숙하단 말이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에서 문화적 코드가 비슷함을 느꼈다. 그 이유가 궁금해져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사랑스러운 친구는 내가 유럽/미국식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어서 현장에서 보더라도 “와, 처음 보는 문화다!”보단 “아, 내가 화면에서 보던 그 분위기네”로 흡수한단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장면을 브이로그에서 여러 번 본 것 같다. 그래서 낯설면서도 낯익었던 거구나. 또 도시의 톤 자체가 워낙 차분하니까. 원래 분위기에 민감한 나에게 네덜란드의 정돈되고 실용적인 톤은 강렬함이 적었다. 그렇게 약간의 아쉬움을 가진 채 암스테르담을 떠났다.
여행 마지막 날에 다시 들린 네덜란드에서는 바닷가 마을인 ‘잔드보르크’에 방문했다. 포뮬러원 서킷으로 유명한 곳인데, 마침 레이스가 진행되는 주여서 거리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잔드보르크에서는 바닷가 마을 특유의 잔잔하고 여유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포뮬러원 경주가 진행되는 마을답게 거리에는 체커기가 여기저기 걸려 있고, 네덜란드 출신의 드라이버인 막스 베르스타펜을 응원하는 깃발도 많이 보였다. 버스 정류장의 디자인도 체커기였는데, 도시가 온통 포뮬러원으로 디자인돼 있어서 경주가 없는 시기에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게다가 잔드보르크 서킷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캘린더에서 사라질 예정인데 말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번 여름에 여행한 유럽의 세 국가 중에서 가장 예뻤던 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다. 대마 냄새로 여행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마무리되긴 했어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돌아와서 길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암스테르담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가끔 암스테르담이 그리워질 때면 브이로그를 찾아본다. 암스테르담의 분위기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고작 대마 냄새 때문에 도시를 벗어난 게 아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마향은 나에게 고작이 아니었고, 다시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 냄새를 피하기에 급급할 거라는 것을 안다. 암스테르담은 가장 완벽한 도시로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대마향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