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오전의 얼굴과 초록빛 오후의 얼굴
도시와 도시 사이: 여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도시 전체를 감싼 운하를 따라 걸으며 암스테르담의 평온함에 푹 빠졌다. 북유럽다운 건축 양식과 쌀쌀한 날씨는 덤이다. 이토록 정돈되고, 이토록 차분한 도시를 왜 이제껏 몰랐을까?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다가 경유가 싫어서 환승지인 네덜란드로 목적지를 변경한 한국에서의 나를 칭찬해 줘야겠다. 나에게 필요했던 이 고요를 잘 찾아냈구나. 잘했어.
베긴호프는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생활하는 공간이다. 입구에서 정숙을 요청하는 안내원의 이야기를 듣고 입장하면 건물에 둘러싸인 작은 단지가 모습을 보이는데,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어서 금세 돌아볼 수 있었다. 베긴호프를 나와 암스테르담의 대표 플리마켓인 노르데르 마켓으로 걸어가던 중 식수대를 발견했다. 신기한 마음에 물이 나오는 버튼을 눌렀다. 콸콸 쏟아지는 물을 보면서 이걸 정말 먹을 수 있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잠시 물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수질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여행 한 번 하면 피부가 다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지사고, 어렸을 때는 식당에서 나오는 물은 아예 마시지 않았다.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웬만한 물은 다 잘 마시지만, 여전히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면 삼다수만 구매할 정도이다. 물맛에 예민한 나에게 수돗물을 마시는 유럽 문화는 큰 걱정거리였다.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온 여행에서 물보다 와인이 더 싼 나라들을 2주 동안 여행하며 매일 2L 생수병을 구매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고 나서는 숙소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물을 마시지 않았다. 혹시나 물이 맞지 않아서 탈이 나면 안 되니까. 체크인 후에 숙소에서 처음으로 수돗물에 도전했다. 네덜란드의 수질이 세계 최고라는 것을 알아서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 그 도전의 첫 느낌은 “어? 생각보다 괜찮잖아?”였다. 개인적인 소감으로 그동안 먹었던 모든 물을 통틀어서 가장 맛있는 물맛이었다. 그 이후론 여행 내내 수돗물을 마시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벨기에에서는 물이 마시고 싶으면 숙소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프랑스 식당에서 제공해 주는 물도 거리낌 없이 마셨으니까. 이래서 첫 경험이 중요한가 보다.
네덜란드는 대마가 합법화된 국가 중 하나로, 특히 암스테르담 중심부에선 대마를 판매하는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간이 오후로 넘어가면서 관광객들이 모여들자, 오전의 평화로웠던 길거리는 대마 냄새가 가득한 혼잡스러운 거리로 변했다. 처음에는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가 고수향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향들이 점점 더해지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대마를 피해서 체크인 시간이 되자마자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집값이 유독 비싼 암스테르담답게 숙소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4인실이었던 내 방은 대마향이 넘쳐흘렀다. 누군가 대마를 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는 중임이 틀림없었다. 방에서 도망치듯 나와 휴게실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이 냄새를 피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방을 바꿔 달라고 할까? 그냥 다른 도시로 갈까? 오늘 오후를 되돌아보면 길거리에서도 대마 냄새를 피하기가 힘들었어. 만약 방을 바꾼다면, 숙소에서는 냄새를 피할 수 있겠지만 결국 매일 그 냄새를 만나게 될 거야. 하지만 이미 9일 치 숙소 값을 지급한 걸. 반고흐 뮤지엄도 가야 하고 말이야.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오갔지만, 솔직히 말해서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벨기에 브뤼셀행 기차표와 숙소를 예매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다인실이 아닌 1인실로. 조금 비싸도 마음이 편한 것을 택했다. 그런데 왜 벨기에로 가냐고? 왜냐하면 다음 주에 브뤼셀과 브뤼허에 여행 갈 계획이었거든. 간단히 생각하면 원래 가려던 곳을 조금 일찍 가게 된 것이다.
여행 팁!
네덜란드에서는 Coffee Shop을 조심해야 한다. 흔히 Coffee Shop은 이름 그대로 ‘커피를 판매하는 매장’으로 인식하지만, 네덜란드에서 coffee shop은 대마를 포함한 상품을 판매하는 모든 매장을 말한다. 따라서, 커피나 식사를 원한다면 café라고 적힌 곳을 방문해야 한다. 만약 헷갈린다면 풀잎 모양의 간판이 붙어져 있는 가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자. 네덜란드에서 대마가 합법일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대마가 불법이기에 귀국 후 우리나라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또한, Cannabis 등 대마를 칭하는 여러 단어들도 조심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음식은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 본인도 모르는 불법을 저지르게 될 수 있으니까. 기억하자. 네덜란드에서 커피가 마시고 싶다면 무조건 café에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