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수도, 브뤼셀에서 만나

12개의 별을 담은 유럽연합 본부로

by 박나린
도시와 도시 사이: 여름, 벨기에 브뤼셀


관광지는 안 가? 응, 별로 안 좋아해. 유럽에는 역사적인 건축물들도 많잖아! 응, 근데 난 현대적인 건물을 더 좋아해. 그래서 브뤼셀에서의 첫 목적지는 유럽연합 본부가 됐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세상 제일 똑똑이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 유럽연합 본부로 향하기 전에 밥부터 먹어야지. 곧장 숙소 근처의 카페로 향해서 카푸치노와 빵 오 쇼콜라를 구매했다. 완전한 유럽식 아침 식사. 달콤하게 체력을 보충하고 집을 나섰다.




지도를 켜서 대략 길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계속 걷던 중에 미국 시리즈 ⟨Emily in Paris⟩에서 본 듯한 유럽식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공원을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다. 곧장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아무 벤치에 철퍼덕 앉았다. 깔끔하게 포장되지 않은 바닥은 바람이 불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흙먼지를 일으켰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마저 유럽다웠으니까. 아니, 사실 흙먼지 때문에 얼마 앉아 있지 못하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쁜 건 예쁜 거고, 흙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쓰기는 싫잖아. 그런데 먼지는 공원에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걷는 내내 도로에 먼지가 많다고 생각하면서 유럽연합 국기가 쭉 펼쳐져 있는 거리에 들어섰다. 전부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익숙한 감정이 들었다. 긍정적인 의미의 익숙함. 이제 고작 유럽 여행 3일 차지만, 역사적인 건물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익숙함이라는 게, 이곳의 모던한 건물들이 한국의 건물들과 닮은 것이 아니다. 분명 다르다. 오히려 호주에서 봤던 건물들과 닮았다. 그뿐만 아니라, 더블데커(double-decker) 트레인, 트램, 버스, 거리 모습 등 많은 부분이 호주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익숙함만 느껴졌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 익숙함이 꽤 날카롭게 다가왔다. 인간의 적응력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매일 생활하는 곳과 잠깐 머물렀던 곳에서 오는 익숙함이 이토록 비슷하다면, 나의 경험에서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조리 흡수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인지하지 못한 틈에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건 나에게 매우 무서운 일이다. 내 인생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좋은 영향력을 가진, 언제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그런 친구들이 모인 곳이 나에게는 국제기구다. UN과 유럽연합이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다르다고 해도, 나에게 이 두 연합은 공생하는 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늘 동경했고, 개발 경제와 정부 정책을 다루는 전공을 공부하면서 “내가 국제기구의 공무원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 생각을 했을 땐 이미 성적이 바닥을 치고 있는 터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벨기에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12개의 별이 촘촘히 박힌 유럽연합 국기였다. 이런 기구들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솔직히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유럽에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어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어서? 사회적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직업이어서?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다름이 인정받는 세상을 원했다. 잘 알지는 못해도 UN과 EU에서는 다름을 인정해 줄 것 같았다.




오후에는 그랑플라스를 방문했다. 별 건 없었다. 커다란 광장을 한 번 둘러보고, 점심 식사를 위해 들린 레스토랑에서 3만 원이 넘는 한 끼 식사에 놀라고, 까르푸에서 과자들을 구경하고, 파프리카 맛 감자칩을 한 손에 든 채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벨기에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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