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우 Jul 04. 2021

시간에 대한 푸념

군대에서의 시간


"야, 200일 아직도 안 깨졌냐."

"난 300일도 안 깨졌다."

"하이씨 (웃음) 개 짬찌네."

"430일 남았다고? 아 어지럽다 (웃음) 수고해라."


라고 말하는 동기와 선임들 사이에서 내 전역일을 떠올린다.


503일..

정말 어지럽구만.


군대의 계급과 권력이란 결국 시간이다. 누가 더 먼저 들어왔는가, 누가 더 많이 군대 밥을 먹었는가, 누가 이 생활이 더 몸에 베었는가. 이런 유치하고 단순한 시간의 싸움이 곧 권력이 된다. 자신의 위치는 내 옆, 내 앞에 존재하는 이들의 전역일들 사이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내 시간 앞에, 누군가는 내 시간 뒤에 위치한다.


군대에는 고유의 시간이 흐른다. 사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속도로 흐르고 다른 질감을 지니며 무엇보다도 다른 의미를 지닌다. 완전히 다른 타임라인이 새로 주어진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 21살까지 밟고 살아온 시간과 다른 시간을 맞이하는 일은 꽤 이질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형 누나 동생들은 나이에 의해 나눠졌다. 내가 더 먼저 태어났으니 형이고 네가 더 늦게 태어났으니 동생이 된다. 먼저 인생을 경험한 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는 동시에 그들이 먹은 시간 만큼의 값을 할 것이라 기대를 한다. 나이는 권력인 동시에 부담이 된다.


군대에서 나이는 다시 매겨진다. 사회의 타임라인이 초기화 되고 새로운 타임라인이 생성된다. 

군대의 시간의 탄생과 종말은 사회의 것과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입대일은 사망선고를 받는 날이 되고 전역일은 민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생일이 된다. 


군입대를 신청하기 전부터 마음 한 켠에 묵직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입영일이 나오는 순간 이물감은 확실한 형태를 지닌 절망과 체념으로 바뀐다. 유예된 날들 하루하루를 견디며 사형수의 절망감을 조금이지만 느껴본다. 입영 통지서에는 죽을 날과 죽을 시간이 아주 정확하게 적혀있다. 젠장.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받기 전 마지막 식사를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 푸짐히 먹는 것처럼 입대 예정자도 사회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것들을 마치 의무처럼 먹는다. 치킨. 소고기, 돼기고기, 피자. 남은 친구,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잘 있으라는 이별의 말을 한다. 물론 사형수처럼 이 세상을 떠나 영영 이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까마득한 1년 6개월의 시간은 정말 힘겨운 무게다. 


그렇게 차를 타고 훈련소에 들어선다.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을 고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옮겨 단단한 철문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사형선고일이 시작된다. 뭐 좋은 관점으로 보는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 건강하고 올바른 육군, 국가의 자랑스러운 청년이 되는 날이라고도 한다. 


이제 나는 입대를 한 순간을 기억하며 전역을 할 날을 상상한다. '이 정도면 꽤 많이 했네.'하고 착각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내 앞, 내 옆에 있는 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사형선고를 받았고 나보다 훨씬 먼저 다시 태어나 민간이 된단다. 젠장. 영화 <소울>에 나오는 탄생전의 영혼이 된 것 같다. 하, 세상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열정을 찾고자하는 숭고한 목표라도 있지. 군대는 사회에 있던 것들을 소거하고 압축하여 생활반경을 고등학교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놓았다.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내게 떠밀려오는 시간을 통과해낸다. 어김없이 아침 기상시간이 찾아오고 졸린 눈을 비비고 꾸역꾸역 삼시 세끼를 밀어넣고 휴대폰을 하다보면 저녁점호를 하고 취짐에 들어간다.


 군대에서 지낸 시간들이 대견해지려 할때쯤 다가올 시간들이 떠오르면 내가 지나온 시간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이라고 여겨지게 된다. 며칠 주기로 이런 잡념들을 반복하며 찝찝한 성취감과 지겨운 당혹감을 맛본다. 

시간이 희망이자 절망이다. 다행인 것은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그 시간이 꽤나 남았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창작 예술은 정말 오른쪽 벽에 다다랐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