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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리아 Jan 01. 2021

연년세세 / 황정은

내가 몇 시에 퇴근하든 엄마는 부엌에 불을 켜두고 나를 기다렸어. 다른 식구들이 다 자고 있어도 엄마는 자지 않았지. 매일 늦게까지 나를 기다렸다가 금방 지은 밥하고 새로 끓인 국으로 밥상을 차려줬어. 


그런데 엄마, 한만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 


그 애는 거기 살라고 하면서 내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나는 늘 그것을 묻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한영진은 오래전에 그 말을 들었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마다 그 말을 지침으로 여겼다. 이순일도 그랬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살아보니 정말이지 그게 진리였다.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는 없으니까. 

p.82 


이순일은 한세진이 잘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아이는 살림을 몰랐다. 스테인리스 찜기 속 물이 다 증발하도록 가스 불에 내버려두었고 내열컵도 아닌 유리컵에 금속 스푼을 넣지도 않을 채 갓 끓인 물을 따랐다. 유리병이든 컵이든 생각에 잠긴 채로 뭘 쥐고 있다가 손에서 그걸 놓치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손아귀에 힘이 하나도 없는 아이들. 뭘 움켜쥘 줄을 몰라 바깥에서 무슨 일을 당하면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사라질 것 같은 아이들.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p.138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게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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