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황정은, 창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족 이야기로 읽을까?"
작가의 말에서 황정은 작가가 던진 질문에 '네니오' 라고 답하고 싶다.
『연년세세』는 4편의 작은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로 묶이는 연작소설이다. 4편의 단편들은 모두 한씨 집안 여성들의 삶을 말한다. 첫번째 단편 「파묘」는 둘째 딸 한세진의 이야기, 두번째 단편 「하고 싶은 말은」첫째 딸 한영진의 이야기, 「무명」은 엄마 이순일의 이야기, 마지막 단편 「다가오는 것들」은 다시 한세진의 이야기.
「파묘」는 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에 실린 작품이고, 「하고 싶은 말」은 자음과 모음 2019년 가을호에 실린 작품이다. 「무명」과 「다가오는 것들」은 미발표작으로 이번 연작소설을 통해 처음 발표된 작품이다. 황정은 작가의 오랜 팬으로서 미발표작이 실려있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마음이 묵직해져 찔끔 눈물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항상 눈물을 훔치며 마음가는 문장에 밑줄을 치거나 책 귀퉁이를 접어두는 것이 전부였는데. 처음으로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읽은 후의 생각과 마음을 글로 남긴다.
각각의 단편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엄마 이순일, 큰 딸 한영진, 작은 딸 한세진. 그들의 이야기가 풀어지는 동안 한씨 집안 남성들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비중으로 따지자면 9:1정도. 하지만 찰나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는 이순일과 한영진과 한세진의 삶에 남성들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지 유추하기에 충분하다. 황정은 작가는 남성이 등장하는 작은 장면을 적확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했다. 작품을 읽으며 답답하고, 서글프고, 공감됐던 부분을 중심으로 남겨본다.
오래전에 네 아버지하고 여기 온 적 있었다고 이순일이 말했다. 버스를 타고, 그때는 제대로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차창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흙먼지가 이는 길을 몇시간이고 왔다고, 지금처럼 여기로 편하게 올라오는 길도 없어서 능선을 타고 이리저리 돌아서 마침내 묘에 다다랐는데, 절할 때 보니 네 아버지가 저만큼 떨어져서 뒷짐을 진 채 굳이 돌아서 있더라, 그래 어처구니가 없어서, 거기서 뭘 하느냐고 이리 와서 절 올리라고 말했더니 처가 쪽 산소엔 벌초도 하지 않는 법이라고 잡소리를 하기에 너무 당혹스럽고 열받아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얼른 절 올리라고 역정을 냈는데 그걸 듣고도 뒷짐 지고 서 있더라며 그뒤로 야속하고 징그러워 같이 오자고 하지 않았다고, 네 버지와 동행한 것은 그것 딱 한번으로 그쳤다고 이순일은 말했다.
「파묘」p.27
이순일은 위와 같은 이유로 외할아버지의 산소를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번 남편 한중언 없이 찾아온다. 이순일은 고모와 고모부의 착취에 못이겨 한중언과의 결혼을 선택했다. 지긋지긋한 삶의 도피로 선택한 사람 마저 '야속하고 징그럽게' 느껴졌을 때, 도피가 절망이 되는 순간에 이순일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백화점이 한창 바빠 일손이 부족할 때, 차라리 내 밑으로 들어와서 일을 해.
한영진이 한세진에게 말했다.
니가 열심히만 하면 내가 월급은 이백오십까지 맞춰줄 수 있어.
웃기시네, 김원상이 상 건너편에서 조명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그 돈을 니가 무슨 수로 주냐, 니가 무슨 권한으로.
「하고 싶은 말」 p.65
이순일은 위로 더 올라가보고 싶어했는데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억새를 바라보며 서성이기만 했다. 김원상이 이순일에게 등을 내밀었고 이순일이 그 등에 업혔다. 그 순간을 한영진을 보았다. (중략) 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한영진은 김원상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하고 싶은 말」 p.70
한영진의 남편 김원상은 아내를 무시하는 말을 내뱉는다. 한영진은 김원상의 태도에 가끔 언짢음을 느끼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왜냐면 김원일은 세입자에게 다급하게 돌려줘야 할 팔천만원을 마련해오고, 무릎이 좋지 않은 장모님을 등에 업고 오름을 오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것들이 '더러 있었던' '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을 무마하기 충분한 이유였을까.
아무튼 누나는 정치적으로 좀 편향되었어.
뭐?
쏠려 있다고, 한쪽으로.
한세진은 어리둥절해 한만수를 보다가 왜 네가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한만수는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는 듯 한세진을 보더니 음, 하고 눈을 굴렸다.
누나는 매일 팟캐스트를 듣잖아.
「파묘」 p.38
그래도 누나, 너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지는 마.
그런거 아냐.
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효?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파묘」 p.44
한세진을 향해 던진 동생 한만수의 악의없는 질문들 역시, 말문을 막히게 한다.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것 자체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기 더 적합한 조건으로 치환되는 것 또한 많은 이들의 현실일 것이다.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표현이 있다. 엄마, 첫째 딸, 둘째 딸, 막내아들, 아버지 등의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본인의 이름을 갖는다. 황정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이니셜로 인물이 표현되는 경우도 많지만 『연년세세』는 그렇지 않다. 가족의 이야기지만, 각자의 몫을 살아가는 개인들이 있다. 이순일은 이순일로, 한영진은 한영진으로, 한세진은 한세진으로 자리한다. 그래서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가 궁금해 했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족 이야기로 읽을까?" 이 질문에 '네니오'라고 답하고 싶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개개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황정은 작가의 글을 생각하면 김금희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경애가 일영을 좋아하는 건 그렇게 빡빡한 생활에서 일영이 획득한 세상만사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먹고사는 일에 대한 지긋지긋함 같은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살겠다'라고 하는 일관된 당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 태도는 무던함, 씩씩함과도 연관됐다. 경애는 언제나 어찌 되었건 살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견딜 수없을 것 같은 마음이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김금희, 『경애의 마음』 , 창비
황정은 작가의 글은 '일영'같다. 결핍을 연민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결핍을 체념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건조하고 적당한 거리를 둔 문체로 담담하게 이것 또한 누군가의 삶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냥, 이것또한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이라고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