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I met her
희진을 알고 지낸 지 올해로 딱 10년이다. 우리는 2010년 3월 2일,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새초롬하게 앉아있던 내게 희진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희진이 존댓말로 건넨 인사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내가 더 이상 나이가 같은 친구들만 있는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교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색한 존댓말로 우리는 서로 나이와 사는 지역 등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는 희진과 별로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놈의 존댓말 때문인지 우리의 첫 대화는 중고물품 직거래를 위해 만난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우리는 집이 가까워 매일 통학버스를 함께 타고 다녔다. 안양에서 안성까지 통학거리는 1시간, 집으로 돌아올 때도 함께 오곤 했다. 오고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통하는 게 있었다. 우리는 지적 허영심은 많으나 비상한 두뇌나 덕후기질은 없었다. 그 덕에 모든 걸 애매하게 알고 있었는데, 넓고 얕은 지식을 가진 머리 두 개가 모이니 그래도 할 이야기들이 꽤 많았다. 좋아하는 시인, 영화 따위의 이야기나, 서로 쓴 소설과 시나리오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다가, 갑자기 신랄한 토론을 이어가는 날들도 많았다.
먹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나는 무엇을 먹어도 배만 부르면 된다는 주의였고, 희진은 미식가였다. 희진 덕분에 맛의 세계에 눈을 떴달까. 나는 희진에게 맛있는 고기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리는 맛없는 것을 먹으면 같이 화를 냈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같이 행복해했다.
그 결과 나와 희진은 10kg가 쪘고... 그걸 다시 또 함께 뺐다. (아, 지금은 요요로 둘 다 다시 10kg가 쪄있는 상태인 건 함정)
희진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의 엄청난 서사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우리의 10년이 취향과 음식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우리의 서사는 생각보다 심플했구나.
넌 나고 난 너야, 하지만
대학시절 학보사 생활을 꽤 열심히 했다. 나는 희진을 꼬드겨 학보사로 끌어들였다. 희진은 아마 장학금을 준다는 이유로 학보사 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내게 학보사에서 글을 쓰며 선배, 동기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웠던 일인 반면 희진은 한 학기 학보사 생활을 맛보더니 그다음 학기에 바로 관뒀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친한 친구와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희진의 선택이었으니 뭐라 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희진은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자퇴했다. 영화과에 가고 싶다는 이유였다. 희진이 자퇴한 날이 기억난다. 학교에 가기 싫어 실컷 늦잠을 자고 오후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자퇴서를 냈다는 희진의 문자가 와있었다. 자퇴서를 쓰는 모습이 어딘가 쿨하고 멋져 보일 것 같아서 자퇴서 쓸 때는 꼭 같기가 기로 해놓고 희진은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날 홀랑 자퇴서를 제출해버렸다.
희한하게도 희진과 나는 같은 집단에 속하기 항상 어려웠다. 희진은 내게 가끔씩 본인의 과 친구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는데, 나는 희진의 친구들과 있는 게 어딘가 불편했고 희진 역시 내 친구들과 있는 게 편해 보이진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속한 집단에는 융화되지 못한 채 둘만 만나는 관계를 무려 10년간 이어오고 있다. 10년이면, 함께 아는 친구들도 알음알음 생기고 함께 만날 지인들이 생길 법도 한데.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넌 나고 난 너야’ 싶을 정도로 서로를 잘 안다. 하지만 희진과 나의 세계관에는 정말 둘뿐이다. 희진과 나는 함께 있을 때 종종 이야기한다.
“심심하고 외로워.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우리 관계에 영입하기엔 귀찮아. 그냥 오늘도 우리끼리 놀자.”
기대도 실망도 없는 사이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관계로 보이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권태기 없이 10년을 지내온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최소 5편, 웹 소설 최소 3편, 팟캐스트, 브런치, 블로그, 희진 고양이로 인스타 셀럽 되기, 워킹홀리데이, 해외여행, 국내여행, 고시공부, 영어공부, 운동...
둘 중 한 명이라도 행동력이 있었다면, 우리가 10년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입으로만 짰다. 지적 허영심은 있지만 덕후 기질은 없어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거나 꾸준히 이어가기는 둘 다 굉장히 어렵다. 가장 친한 친구 둘이 10년 동안 여행 간적 단 한 번도 없다는 데서 말 다 했지 뭐. 입으로만 나불대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서로가 질릴 법도 한데, 나는 희진이 질리지 않는다. 왜일까?
우리 사이에는 가치판단이 없다. 노오력하지 않는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이렇게 표현하니 마치 희진과 내가 무척 비생산적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심한 삶은 절대 아니다. 10년 동안 이미 서로에 대한 사상검증이 끝난 사이랄까.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식과 도덕의 선을 절대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가 있다. 그야말로 오랜 시간의 힘이다.
희진을 알게 된 지 6-7년쯤 되었을 땐가. 한창 워킹홀리데이 바람이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떠나고는 싶지만 막상 떠날 용기는 없는 상태였는데, 만약 희진과 함께 간다면 정말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잠깐 1-2년간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체험하는 워킹홀리데이가 아니라 영원한 이민이라고 해도 희진과 함께 가면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오늘도 조연이다
희진이 가끔씩 하는 말이다. 희진은 어느 무리에 있을 때 두각을 나타내거나, 빛나는 타입이 아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우리는 조연 유전자를 타고났지만, 다른 점이 있다. 나는 은근히 주연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고, 희진은 좋은 조연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다. 희진은 여우조연상을 받을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희진은 취향이 비교적 유연하다.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액션 장르를 뛰어넘어 활약하는 좋은 조연배우처럼 희진은 만나는 사람들의 카테고리도 다양하고, 다니는 곳의 폭도 넓다.
희진은 내 기준 받아들일 수 없는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들까지 수용할 때가 있다. 간혹 영화를 보면 배우 존재 자체가 개연성이 될 때가 있는 것처럼 희한하게 희진이 수용하는 의견이면 '어딘가 믿을 구석이 있는갑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도 많다. 또 좋은 조연배우들은 작품을 더 위대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희진은 사람 관계에서 그러하다. 금이 간 관계도 깨뜨리지 않고 조심조심, 부드럽고 유하게 다룰 줄 안다.
희진은 모난 구석이 없어 어디든 잘 굴러간다. 둥글둥글 소리 없이 굴러다녀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찔릴 위험 없는 사람이랄까. 그래서 희진과 있을 땐 언제나 가드를 내리고 무장해제된다. 희진은 10년간 나를 찌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는 희진을 몇 번이나 찔렀을까, 종종 생각해본다. 우리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한들, 아무리 잘 통한다고 한들 각자의 입장이란 게 있는 거니까. 희진과 함께 하기 위해 인격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까지의 10년보다 더 좋은 10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