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에 대한 설렘
25년 동안 나는 한 번도 멈춰본 적이 없다.
원자력 관련 연구소에서 일을 하며 아이 셋을 키우고,
20년 가까운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돌이켜보니 하루하루는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에 가까웠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난 어느 순간 내 삶의 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 문을 열었다.
그런데 집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아이들은 학원에, 남편은 늦는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홀로 거실에 있었다.
낯설었다.
편안해야 할 공간에서 나는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유를 찾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의 삶 속에 '나'는 없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느새 많이 자라 있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챙기느라,
정작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부족함 없는 삶.
겉보기엔 편안함으로 가득 찬 일상이였지만,
그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이 갑자기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지만,
어딘가 늘 외로웠고, 허탈했고,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살아온 시간은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이름으로 쓰인 인생의 다음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초, 상사의 배려로 런던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밤에 템즈강변을 따라 걸었는데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 그 고요함이 좋았다.
밤하늘에 그림같이 떠있는 달과 별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상했다. 예전엔 이정도로 감상적이진 않았는데...
낯선 곳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
그 시작은 해외대학의 '방문연구원'이라는 도전이었다.
혼자가 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날의 고요한 집안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제는 나를 위한 한 페이지를 펼쳐도 되는 때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