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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담쟁이 Aug 31. 2016

나의 꿈, 아이의 꿈

Seize the day

창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잠을 설쳤다. 강풍이 이웃나라를 덮쳤다더니 그 때문인가 보다. 날이 제법 차다. 딸아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책은 침대 위에 가까스로 걸쳐져 있고 아이는 미동도 않고 잠에 빠져있다. 지금 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평소 존경하고 있던 지인에게 큰 실망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의 행적이 의아하여 몇 차례 문자를 보냈으나 답변이 없었다. 대충 짐작은 갔다. 그는 나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입버릇처럼 해왔던 것이고 데드라인이 코앞에 다가오자 숨어버린 것이다.


살다 보면 별일도 다 겪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행히도 금전적인 손실은 없었지만 1년 넘게 이어온 나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말이 이런 어이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지난 1년의 경험들이 나를 얼마나 성숙시켰는지를. 그렇기에 산산조각이 난 꿈의 파편들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 겪었던 수많은 실패와 낙담이 나를 얼마나 단련시켰던가.  순 좋았던 일들이 먼훗날 좋지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지나간 날, 나의 꿈을 되돌아본다. 이룬 것도 있고 아직 꿈으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그중 한가지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바람이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오 남매의 맏딸이 버려야 했던 그 꿈.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으면서 나는 바람과는 다른 이 길을 걸어왔다. 이 길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했고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천직이라 말하곤 했다. 원래 가고 싶었던 길을 갔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나은 삶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다른 길에서 나는 새로운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었던 것이다.


오십 대 중반의 나이, 이제는 퇴직이후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새로이 출발하는 인생은 어렸을 때 접어두었던 꿈이 함께 할 것이다.


나처럼 꿈을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딸들, 그들이 예전에 꾸었던 꿈 역시 지금 청춘들의 꿈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살림밑천이 되기 위해 꿈을 접어야 했던 이 땅의 수많은 딸들이 조금씩 빛바랜 꿈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있다. 배움의 현장 구석구석에 삶의 연륜을 채운 나이 지긋한 그녀들이 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삶의 활력이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연령대 역시 이 나이대라고 하니 이것은 제 2의 인생에서 꾸는 꿈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큰 아이가 대학 졸업반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음에 안타깝기만 하다. 선택의 몫은 본인의 것이지만 또 다른 길에서도 꿈을 꿀 수 있기에 나는 이렇게 말해줄 뿐이다.


Seize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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