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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담쟁이 Sep 04. 2016

부모 노릇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멀리서 우리 집을 방문한 남편의 사촌 누님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뒷 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며 자식들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친정 어머니의 기일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엄마, 아이고 엄마. 이제야 엄마 마음을 알겠네. 엄마가 당한 걸 내가 똑같이 당하고 있어요. 내가 얼마나 못된 딸인지 이제야 알겠어. 아이고 엄마. 내가 잘못했어."


누님의 울음섞인 넋두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 어른이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들 하지만 누님의 넋두리는 나에겐 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동안 그녀의 가슴은 얼마나 곪아 있었던 것일까


 어버이 날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떠 올리게 되는 노래. 학창시절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다가 너도 나도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던  '어머니의 마음', 그 노랫말.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부모의 입장에서 듣는 이 노랫말은 가끔씩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침조례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더니 미지가 보이지 않았다. 보건실에 갔다는 아이들 말에 달려갔더니 미지는 한눈에 보아도 몹시 아파보였다.  밤새도록 혼자 아픔을 견디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졌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미지는 고아이다. 미지는 얼마전 엄마와 헤어졌던 날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여섯 살로 기억하는 그 날 밤, 미지는 엄마와 함께 기차역에 있었는데 화장에 다녀온 사이에 엄마가 사라졌다고 했다.


엉엉 울고 있는 민지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미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사람들 역시 미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미지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을 거쳐 농아 복지원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학령기가 되어 지금의 특수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미지는 자기의 장애때문에 엄마가 일부러 자기를 버린 것 같다고 말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상당수가 학교 옆에 있는 청각장애아를 위한 복지시설에서 등하교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방학이나 명절이 되어도 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가족 한 명 찾지 않는 방에서 외롭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 짝이 없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유치원에 입학 시키고는 한 번도 찾지 않다가 아이가 취업을 앞둔 고3 무렵에 나타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아이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교육해온 대로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자식이 될 것”을 약속한다.


아,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 이나 '부모에 대한 효'라는 말은 얼마나 부모중심의 강요된 미사여구였던가.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물론 위에서 말한 내용을 일반화시켜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식을 위하여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면서 헌신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부모님들께 누가 될 테니 말이다.


자식을 키워본 부모라면 순간순간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다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부모에게 준 기쁨에 비하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사춘기의 그 끝도 없는 아이들의 반항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나의 자식들에게 훈계라고 하는 말들이 그들에게는 얼마만큼 와닿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이기심으로 아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쩌면 먼 훗날 내자식이 곪을대로 곪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삶의 무게를 지고 가야할 업을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적당하게 놓아주는 것. 그것 또한 현명한 처신이겠다는 생각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해 본다. 아이들이 나에게 주었던 많은 기쁨들을 선물로 생각하며 겸허히 자식을 키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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