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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May 08. 2024

무지갯빛 자폐스펙트럼

노란색의 이야기 - 반복행동


B.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이나 흥미, 활동이 현재 또는 과거력상 다음 항목들 가운데 적어도 2가지 이상 나타난다.


1. 상동증적이거나 반복적인 운동성 동작, 물건 사용 또는 말하기(예, 단순 운동 상동증, 장난감 정렬하기, 또는 물체 튕기기, 반향어, 특이한 문구 사용)


- DSM-5의 자폐스펙트럼 진단기준 중 -




언어치료사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나의 근원적인 목표는 '아이들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활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이의 '언어능력'뿐만 아니라 '의사소통능력'을 보다 증진시킨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언어능력이라 하면 '말소리'로 표현되는 범주를 주로 떠올린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이가 친구를 만났다.


"안녕?"

"안녕?"


두 아이들은 서로 말소리로 인사를 나누었다. '언어'를 사용했고, 의사소통이 서로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떨까?


"안녕?"

"(말소리 없이 손을 흔듦)"


한 아이는 말소리를 내었지만 다른 한 아이는 말소리 없이 그저 손을 흔들었다. 혹은 두 친구가 마주쳤는데 둘 다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언어'사용은 없었다. 언어 사용이 없었다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는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우리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언어'라는 방식을 소리로 내뿜으며 이루어진다. 그러나 모두 '언어'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언어를 대부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언어발달이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들의 경우 현재 언어사용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어 외 '행동'들이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의사소통을 대신하고, 도와주고, 보완해 주는 이 행동들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렇기에 언어치료사가 대하는 영역은 말소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자폐스펙트럼을 지닌 아이들 중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반복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보았던 이 반복 행동들은 아이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까치발로 특정 공간을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는 아이도 있었고, 손을 이리저리 흔드는 아이도 있었다. 연필이나 기다란 물건을 들고 흔들거리는 아이도 있었고, 손바닥이나 손가락으로 책상이나 바닥을 계속 치는 아이도 있었다.


이 행동들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행동이 보이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 독특했다. 또래 아이들은 잘하지 않을 법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독특했다. 두 번째, 반복되었다. 수업시간이나 기다리는 시간에, 낮이고 밤이고 아이는 이 행동을 자주 반복했다. 여러 가지 행동에는 어떤 '의도'가 들어있기 마련인데 이 행동들은 그 의도가 무엇인지 선뜻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이 세 번째 공통점이었다.  






기다란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연필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잡은 채 흔들흔들거리면서 책상에 그 물건을 계속 치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기다란 물건의 한쪽 끝을 살짝 잡아서 반대편 부분을 책상 모서리 등에 톡톡 쳐 대었다.


언어치료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특정 말들을 알려주어 발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자발적으로 발화표현을 하거나 일련의 과제를 잘 듣고 정확하게 수행하면 아이에게는 감각을 추구할 수 있는 기다란 물건이 보상물로 주어졌다. 아이는 지정된 시간 동안 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아이는 이 장난감을 톡톡 치는 시간에 열중했고, 몰입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저 행동을 왜 하는 것일까. 아이가 긴 막대기를 톡톡 치고 있을 때 나도 옆에서 아이와 똑같이 해 보았다. 이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때 아이가 느끼는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 번이라도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면 아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아이를 관찰했다. 아이는 아무 긴 막대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딱딱한 것보다는 아주 약간 말랑한 것을 선호했다. 예를 들면 나무연필보다는 수수깡이나 자동차 장난감에 달려있던 살짝 구부러지는 게 가능한 재질의 긴 부품을 더 좋아했다. 너무 두꺼운 것보다는 납작하고 얇은 것을 선호했다. 머리빗보다는 얇은 자를 더 좋아했다.    

  

아이는 막대기를 들고 여기저기를 쳐 보았다. 맨 책상 위보다는 모서리 부분을 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책상의 살짝 라운딩 된 모서리 부분을 칠 때 가장 좋아했다. 종이 박스보다는 매트 위를 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탁탁'거리는 소리를 추구한다고 생각했다. 좀 더 살펴보자 소리보다는 막대기를 툭툭 칠 때 자신의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선호하는 듯했다. 이 행동은 아이가 커가면서 손바닥으로 벽을 치는 행동으로 변해갔다. 손바닥을 쫙 펴고 벽을 지속적으로 두드리며 손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언어치료를 진행하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말과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조금씩 늘어갔다. 말이 늘어갔지만 아이의 이 행동은 잔존했다. 소통이 담기지 않은, 반복적인 이 행동. 나는 이 행동을 이해하고 싶었다. 집에서도 아이들이 하는 행동들을 자주 따라 해 보았다. 왜 이 행동을 할까. 이 반복적인 행동이 아이에게 뭘 가져다주는 걸까. 간절하게 궁금했던 많은 날들.


아이의 반복적 행동이 일상생활에 위험이나 큰 방해를 초래하는 행동일 경우 단체생활에 어려움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이 행동을 조금씩 보다 '용인되는'행동으로 변경해 주고자 했다. 아이는 몸이 자라면서 손을 치는 행동의 강도가 점차 커졌고, 특히 격양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손이 새빨개질 정도로, 큰소리가 저 멀리 울릴 정도로 계속 벽을 쳐 대었다. 어떤 날은 내리 뛰어다니며 여기저기의 벽을 치기도 하였고, 어머님께서 어젯밤 밤새 벽을 쳤다고 하는 날도 있었다. 아이는 무료할 때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한 의도로 이 동을 하기도 했지만, 격양된 감정이 일 때도 이런 반복행동을 하였다. 행동의 강도가 세지면 위험한 행동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머님과 논의하며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자극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용인된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바꿔줄 필요가 있었다. 어머님과 나는 벽을 치는 이 행동을 장난감 북 치기와 미술용 스펀지 치기, 손뼉 치기 등의 행동으로 변형시켜 주고자 노력했다.


행동이 약간씩 변형되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중재로 일련의 시간 동안 행동을 잠깐 참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이는 이 제한적인 행동을 간헐적으로 계속했다. 많은 어머님들이 아이의 이해 못 할 행동을 없애고 싶어 하셨다. 어떤 아이는 행동의 양이 점차 줄어들어 낮에는 잘 참았다가 집에 와서 행동을 한다던지의 정도로 조절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고, 어떤 아이는 원래 있던 문제가 큰 행동을 보다 사회적으로 용인된 행동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단체 생활에 적응해 갔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반복된 행동을 조절하는데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따금씩 치료실에서 큰 문제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모든 상황과 시간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다. 아이는 혼자 살 수 없었고 단체생활과 사회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그 안에서 용인될 만한 행동으로 이를 조절해 가는 과정. 과정이었기에 문제는 크고 작게 계속되었다.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얌전한 날은 얌전한대로, 문제가 생긴 날은 문제가 생긴 대로 불안하시다고.


아이들은 조금씩, 분명히 커 간다. 반복적이고 고립된 행동이 조금이라도 보다 사회적인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규칙과 일관성, 다양한 외부세계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정서교류, 진심 어린 상호작용과 사랑이 필요한다. 꽤 긴 시간 동안.  


이 과정의 최종결과를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어머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또 용기를 내던 많은 날들. 여전히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과정'중에 있다. 이 시간이 모이고 모여 보다 의미로워지기를 늘 기도하면서. 그리고 아이의 성장시기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 또 찾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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