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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May 03. 2024

무지개 빛 자폐스펙트럼2

주황색의 이야기 - 비언어적 의사소통



A. 다양한 상황에 걸쳐 사회적 의사소통사회적 상호작용의 지속적인 결함이 현재 또는 과거력에 의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2.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사용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행동들의 결함(예,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불완전한 통합, 비정상적인 눈 맞춤과 몸짓 언어, 몸짓의 이해와 사용의 결함, 얼굴 표정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전반적 결핍)


- DSM-5의 자폐스펙트럼 진단기준 중 -




꼭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옛날에 이런 광고노래도 있었더랬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초코파이 광고였는데 혹시 독자분들은 이 광고를 들어 보셨을까. 꽤나 옛날의 광고인데.


단순언어지연 아동들의 언어치료를 진행하면서 이걸 참 많이 느꼈다.

말은 다소 느리지만, 나와 시간을 공유하는 동안 부족한 말 대신 다른 행동들로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끄러울 때 몸을 배배 꼬거나 크게 웃어버릴 때가 있다.  

놀다가 집에 가야 할 때 샐쭉이는 입술 모양은 '아쉬워요'라는 말을 대신하는 몸짓 언어다.

아이가 모르는 척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선생님 다 안다~'라고 말하면 짓는 웃음과 눈꼬리에는 '어색함'과 '들켰다'라는 말이 깃들어 있어 귀엽다.

과장된 턱짓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몸짓에는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요, 나도 그거 같이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녹아있다.

하기 싫을 때 슬쩍슬쩍 작은 어깨를 움직이며 도리도리를 대신하면 또 얼마나 귀여운지.


아주 어린 시절의 아이들은 언어능력이 어른만큼 충분치 않기 때문에 다양한 몸짓언어들이 먼저 발달한다. 아이가 불명료한 말투로, 그 작은 몸을 꼬물꼬물 움직이면 그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엄마나 아빠는 아이의 언어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몸짓들과 함께 아이의 의도를 비교적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언어발달이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이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꽤나 읽을 수 있다. 이 몸짓언어와 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 덕분이다. 비단 어린아이뿐만일까. 어른들끼리의 소통에도 이 비언어적인 행동들은 꽤나 많은 역할을 한다.


"화났어?"

"아니."

"화났는데 뭐.."


표정과 말이 다르다. 이럴 때 우리는 말보다 표정을 더 믿는다. 분명히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목구멍에서 꿀꺽 침이 넘어간다. 최대한 눈치를 보고 신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상황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상황들이 참 많다. 이래서 의사소통은 치열하다.






우리는 얼굴표정이나 행동으로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타인에게 전달한다. 친구랑 카페에서 수다를 떨 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나와 흥분하면 내 몸은 자연스럽게 앞쪽으로 쏠린 형태가 된다. 눈썹이 여러 번 씰룩이고 입술의 움직임도 다채롭다. 그러다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지면 소파에 몸을 묻는 형태로 동작이 바뀐다. 얼굴표정도 보다 편안해진다. 눈꺼풀과 미간에 들어갔던 힘도 풀린다.


그러나 내가 언어발달이 미숙한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다른 아이들만큼 많은 의도 관찰하기 어려웠다. 아이를 만나며 자주 떠올린 단어 중 하나는 '단조로움'이었다. 자폐스펙트럼을 지닌 여러 아이들이 나와의 눈 맞춤이 수월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이따금 눈 맞춤이 가능했다. 의사소통을 엿볼 수 있는 몸짓들 보다는 본인이 무언가를, 어떤 감각을 채워 넣고자 하는 몸짓들이 더 많았다.


어렸을 때는 키우기가 수월했어요.
순하다고 생각했죠.
조용했고, 꼭 필요할 때 빼고는 잘 울지도 않았어요.
발달이 느려서 그런 것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어머님들께 많이 들었던 말들 중 하나는 아이가 '순했다'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대화를 나누어 보면, 아이가 순하다고 느껴진 이유는 아이의 상호성이 적어서였다. 몸짓언어나 울음 등 비언어적인 소통이 많이 발달하는 어린 시기에 아이는 조용했다 했다.   






나는 아이와 소통하기를 원했고, 아이는 단조로웠다.

소통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은 내가 더 컸기에 자연스럽게 나의 눈빛과 몸짓은 더 커지고, 다양해지고, 간절해졌다. 말이 늘기를 바랐고, 말뿐만이 아닌 이 비언어적인 행동들도 늘어나길 바랐다. 너의 마음을 더 표현해 달라고, 이런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자 아이 앞에서 나는 개구리처럼 폴짝였다. 눈 맞춤을  유도하기 위해서 우선 내 얼굴부터 아이의 시야에 들어가야 했다. 반짝이는 귀걸이를 끼고 간 날도 있었고, 이때쯤부터 빨간 립스틱을 자주 발랐다.


이따금씩 치료사인 나에게 학습된 상호성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고,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를 '배경'보듯이 바라보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마다 모습은 달랐지만 '상호작용'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공통점은 존재했다.    


아이와 보다 많은, 보다 깊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꿈꾼다는 그 목표는 생각만큼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에, 혹은 몇 번의 시도로 긍정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 정말이지 많은 인내와 반복, 그리고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노력이 매일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인 언어치료사가 되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커 갔고, 수업은 지속되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 쌓여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변해갔다. 비록 몸이 커가는 속도만큼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변해갔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사회적으로 보다 넓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단체를 거쳐가며 아이들은 보다 많은 이들을 만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나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적절한 대응을 해 주는 사람. 그리고 정말 나를 위하는 사람을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이 생겼다는 건 비로소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상호성을 위한 큰 돌탑의 가장 아랫부분을 차지하는 큰 바위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관심이 없는 사람.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사람'이 있다. 배경으로 여겨지던 내가 아이의 앞에서 사람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는 순간. 의미 있는 시간이 모여 만들어진 그런 순간들.  


그런 날을 고대하며 우리는 힘을 내서 오늘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아이 앞에서 폴짝일 준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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