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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Apr 24. 2024

무지개 빛 자폐스펙트럼1

빨간색의 이야기 - 상호성


A. 다양한 상황에 걸쳐 사회적 의사소통사회적 상호작용의 지속적인 결함이 현재 또는 과거력에 의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사회적, 정서적 상호 관계에서의 결함(예, 비정상적 사회적 접근과 정상적인 대화의 실패, 흥미나 감정 공유의 감소, 사회적 상호작용의 시작 및 반응의 실패)


- DSM-5의 자폐스펙트럼 진단기준 중 -





어머님은 똑똑하셨고, 예민하신 편이었다.

아이를 처음 낳아 외동으로 길러 비교해 볼 형제는 없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불편한 '느낌'은 계속되었다고 하셨다. 아니, 아이가 커 갈수록 더 그 느낌이 커졌다 하셨다.


아이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했다. 그렇다고 말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부분 아이들이 첫 단어로 '엄마'나 '아빠'를 말한다고 하던데, 아이의 첫 말은 '버스'였다 했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자동차 장난감을 매우 좋아했다.


아이는 자동차들을 가지고 놀 때 편안해 보였다. 자동차 하나하나에 몰입해 이리저리 자신만의 자동차 세계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대견하기도 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고 하였다. 혼자서 얌전히 노는 모습만큼 엄마눈에 사랑스러운 모습이 또 어디 있을까.


이따금 엄마나 아빠가 옆에 앉아 '함께'놀면 아이는 자신의 옆에 다가온 엄마를 매우 반기지도, 그렇다고 매우 거부하지도 않은 채 한 번씩 엄마의 말소리를 듣고, 또 자신의 놀이를 계속했다. 크게 떼를 쓰지도, 그렇다고 크게 엄마를 괴롭히지도 않는, 어찌 보면 '조용한 성격의 아이'로 보였다 하였다.


아이가 점점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이 '불편한 느낌'은 보다 커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간식 먹을까?
자동차 재밌어?
놀이터에서 놀고 나면 집 가서 씻자, 알았지?
'엄마 사랑해'해줘야지~


아이는 평소 엄마가 묻는 질문에 잘 대답했다. 엄마는 의사소통에 큰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는 '답답함'.


생각해 보니 아이가 엄마에게 먼저 '대화'를 시작한 적이 잘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낸 적은 있었다. 무언가 필요할 때나 뭐가 잘 안 될 때, 특히 자동차가 없어졌을 때. 마트에서 새 장난감을 사고 싶을 때. 무언가를 원할 때는 아이가 먼저 이야기를 자주 꺼내기도 했다.


그런데 일상적인 대화.

생각해 보니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가족이라서, 엄마라서 할 수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먼저 들어 본 기억이 잘 없었다 하셨다. 기분이 좋은지, 속상한지.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아빠가 감기에 걸려서 아플 때 '어떡하지? 아빠 많이 아프셔~'라는 엄마의 말에 멀뚱히 아빠를 바라보던 아이.


만 세돌이 되기 직전, 집 근처 사설기관에 가서 처음으로 언어검사를 받으셨다 하셨다. 검사 결과 언어능력이 약간 낮았지만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점수는 아닌 정도. 그리고 어머님은 곧바로 대학병원에 초진을 예약하셨다. 초진과 전반적 검사가 모두 끝난 몇 달 뒤, 어머님은 다시 방문한 병원에서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셨다.      

   





만 5세, 우리나라 나이로 6살쯤 되었을 무렵에 이 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만나 공식적인 언어평가를 진행하였을 때 아이는 어휘력의 경우 정상보다 조금 더 높은 능력을 보였고, 전체적인 언어검사에서도 자신의 생활연령에 해당하는 능력이 나타났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아동의 의사소통 기술을 평가한 결과는 앞선 결과와 상이했다. 아동은 질문에 아는 것은 '반응'하였지만, 즉 대답은 잘했지만, 한 번도 먼저 대화를 '개시'하지 않았다. 즉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법은 없었다.


 내가 여러 가지 동사나 의미들을 물었을 때, 아이는 2 어문, 3 어문 수준의 많은 문장으로 대답할 있었지만 나라는 '타인'과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어떠한 언어적 표현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상대'임에도 전혀 호의나 상호를 위한 표현이 없었다.  


그림 속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은 기분이 어떤 것 같아?"라고 물으면 아이는 "슬퍼요, 기뻐요"등 '맞는' 대답을 했다. 그러나 나 함께 진행한 역할놀이 속에서 홀로 떨어진 자동차에게도, 사고가 나서 부서진 자동차에게도 아이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정한 방식의 놀이 순서가 중요한 듯했다.


다양한 감정단어 사진을 보여주고 이를 가르치면 아이는 몇 번의 연습 뒤 '정답'을 말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실제 자신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상황일 때 이를 표현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이따금 혼자 놀다가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 내가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놀이에 몰입했다.






지금의 내 감정을 표현하는 세상의 규칙화된 방식이 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규칙에 맞게 표현했을 때 상대방이 내 마음을 더 알고 반응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했다. 나는 가르쳐야 했고, 아이는 배워야 했다. 아이의 방식대로 감정을 표현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래를 만나거나 흥미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먼저 '어떤 시작하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놀이터에서 또래를 만나면 인사하기, '너는 몇 살이야?'라고 묻기 등.


'사회'라는 곳에서 흥미 있는 것을 만나면 이렇게 누구나 알법한 방법으로 내 흥미를 보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주고받으며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사회적 상호작용'임을 아이에게 천천히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언어치료를 마치고 어머님과 상담을 하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어쩔 줄 모르며 또래 주변을 빙빙 돌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은 단조로운 말투로 '너 몇 살이야'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저 한마디라도 하니 그나마 좀 녹아드는 느낌이에요, 선생님."


어머님과 상담을 이어가며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해 아이에게 아직은 알려줄 것이 많다는 말씀을 드렸다.

"숫자나 알파벳은 안 가르쳐줘도 다 하더니. 이런 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주어야 하네요."

내 말에 공감하시며 덧붙이시던 어머님의 말씀.


아이는 아직도 자신이 아닌 '외부 세상' 어떻게 매끄럽게 진입해야 할지, 그리고 왜 내가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규칙을 조금씩 배워가고 적용해 보는 중이다. 한 발, 한 발, 나아감에 의미가 깃들길, 이 아이의 시간이 보다 '함께'의미로워지기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아이와 대화를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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