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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Apr 17. 2024

무지개 빛 스펙트럼

자폐스펙트럼


누구나 내가 세상의 원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을 경험해 보았을 뿐이다.

-모건 하우절-




나는 언어치료사로 의사소통능력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을 만나오고 있다.


어떤 아이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어떤 아이는 말더듬이 있어서.

또 어떤 아이는 언어발달이 또래보다 느려서 치료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 많은 아이들의 증상 중 내가 가장 많이 마주한 증상은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der)'로 인한 언어지연이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만난 아이들 중 아주 많은 아이들이 '자폐스펙트럼'을 지닌 아이들이었다.


손으로 다 세지 못할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그리고 그 아이들을 모두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자폐'였지만, 아이들 중 똑같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아이가 자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보나요?
 

언어치료 상담에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진단은 소아정신과 의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만약 내가 목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가정해 보자.

의사를 만나 진료를 시작하면 의사는 나에게 아픈 증상을 묻고, 내 목 안을 관찰한다. 때때로 귀 안이나 코 안을 함께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내 신체 상태에 의거해 '급성 편도염입니다' 등으로 진단을 내린다.


그러나 어떨 때는 증상에 따라 피검사 보다 자세한 검사를 요하기도 한다. 왜냐면 목이 아픈 증상은 여러 가지 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목이 아프다'이더라도 병이 편도염일 수도 있고, 임파선염일 수도 있다. 혹은 독감이나 코로나 일 수도 있다.






아이의 발달이 걱정되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를 찾게 되면 마치 내가 이비인후과를 갔것과 비슷한 처리과정을 거쳐 진단이 내려지게 된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보이는 행동을 관찰하고 보호자에게 아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똑같이 목이 아프더라도 병명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언어발달이 느리다는 것'은 다양한 진단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 진단은 단순언어발달지연일 수도 있고 지적장애일 수도 있으며 ADHD일 수도 있고, 자폐스펙트럼일 수도 있다. 방금 말한 네 가지 진단 모두 어느 정도의 언어발달지연이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우선 아이를 살펴본 뒤, 아이에게 다양한 발달검사를 진행한다. 발달 관련 풀 배터리(full battery) 검사는 언어발달검사를 비롯하여 지적능력, 정서행동영역, 심리영역, 감각운동능력, 그리고 주의력이나 자폐와 관련된 검사들로 구성된다. 병원마다 검사의 구성 종류는 다르다.


또 내가 아이에게 의심되는 진단이 어떠한지에 따라서도 검사의 종류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대학병원의 경우 한 번의 이 종합적인 검사 안에 포함되는 검사 종류가 대체로 열 가지가 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사시간도 많이 걸리는 편이다. 검사는 아이에게 직접 하는 검사도 있고, 아이 대신 보호자가 해야 하는 검사도 있다.


검사 결과가 다 나온 뒤, 보호자는 병원으로 재방문하여 검사결과를 들을 수 있다. 아이가 어떤 영역에서 발달에 어려움을 보이는지, 그에 따라 내려지게 된 최종적 진단이 무엇인지까지. 그래서 언어발달이 느려 병원에 가 진단을 받아 보았더니 언어발달에 영향을 준 것이 지적미성숙이거나, ADHD 때문이거나, 자폐스펙트럼일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생각에는 우리 아이가 자폐인 것 같나요?


많은 어머님들께서 초기 상담 때 이 질문을 내게 하신다. '우리 아이가 혹시 자폐일까?'라는 걱정만큼 엄마를 힘들게 하는 생각이 있을까. 엄마에게 있어 가장 강도 높은 불안을 느끼게 하는 생각 중 하나다. '우리 아이가 혹시 자폐인건 아닐까'.


걱정과 의심, 불안, 그리고 두려움.

이러한 감정들은 사실과 별개로 지금의 상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는 이 감정을 어찌하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들불처럼 번지는 이 감정들.


그 감정의 무게를 지켜봐 왔기에.

이 문제가 너무도 중요하기에 내 '생각'이 관여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부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가장 필요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 여부, 그에 맞는 치료방향일 것이다.


언어치료사로서 아이의 발달영역에 있어 확인 가능한 것은 '언어 및 의사소통영역'에 관한 영역이다. 어머님께 현재 언어능력의 발달상태와 특성을 말씀드리고,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 소아정신과 방문을 권고드릴 수 있다.


아이만 병원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엄마도 병원이 무섭다.






그동안 만나온 많은 아이들이 '자폐'라 불렸지만 똑같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명칭에도 적혀있다. '스펙트럼'.

마치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의 색이 연속되어 나타난 띠 형태. 이 색에서 저 색으로 분명히 옮겨지기는 하는데, 두 개의 다른 색 사이에 명확한 구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고, 굉장히 다른 듯하면서도 연결이 되는 이 스펙트럼처럼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들도, 강점도, 취약점도 모두모두 비슷한 듯 다르다.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있는 우리 아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리 아이들을 만난다.


자폐스펙트럼은 현재까지 '완치'를 가능케 하는 약물이나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자폐스펙트럼을 대하는 목표는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아이가 세상의 다양한 빛깔을 보다 받아들일 준비를 돕고, 그 힘든 여정에 기꺼이 함께 하는 것이 치료사의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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