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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20. 2020

TV를 포기하고 만든 신혼집 코인노래방

모든 '선택'에는 '포기'가 따른다.

저번 주 학년 연구실에서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곧 신혼집에 방음부스를 설치한다고 말씀드렸다.


한 선생님이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엥? 방음부스는 집에 왜 설치하는 거예요? 저번에 말했던 노래 녹음하려고? 굳이 이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나... ㅎㅎㅎ 역시 쌤은 특이해... 근데 쌤 와이프는 이런 거 다 허락해줘요? 진짜 대단하시다."


"네? ㅎㅎ 와이프가 저보다 방음부스를 더 원해요.  매일 노래 부르고 싶다고 얼마나 난리를 치는데... 제 아내랑 저랑 관심사가 비슷해요."


"헐~ 부창부수라더니, 역시 그 남편에 그 아내네요. ㅎㅎ 취미가 비슷한 건 진짜 부럽네요."





집 안에 나만의 음악 작업실을 가지는 것은 학창시절부터 나의 로망이었다. 난 음악을 잘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했다. 노래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기타, 바이올린, 피아노 등의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주택이 아닌 아파트이거나 자취방이었기에, 마음 놓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수 없었다.


가끔씩 그런 날이 있다.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 그런 충동이 생기는 그런 날. 당장 집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내고 싶지만 당장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 전화가 올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집 근처의 코인 노래방에 가곤 했다.


실제로 항의가 들어올 뻔한 적도 있다.

고등학생 시절, 엘리베이터에서 밑층 아주머니를 만났다. 당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여서 되게 어색한 사이였는데, 그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말을 거셨다.


"학생, 계속 학생 집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던데, 혹시 누가 노래 부르는 거야?"


"(멈칫하다가) 네. 아버지가 매일 노래를 부르십니다."


당장의 민망함을 무릅쓰고자, 난 죄 없는 아빠를 희생시켰다...(아빠 미안...ㅠㅠ)


그때도 '우리 집에 방음부스가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초부터 방음부스에 대한 나의 로망은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사회초년생에다가 자취생... 자취방에 몇 백만원짜리 방음부스를 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좀 무리가 있었다. 내가 이 자취방에서 계속 살 것도 아니고, 이사 갈 때 이전비만 해도 최소 50만원 이상이었다.


대신에 나의 음악에 대한 욕구를 학교에서 노래 녹음을 하는 것으로 풀었다. 당장 USB 콘덴서 마이크와 헤드폰을 사서 학교에서 녹음을 했다. 4시 40분 선생님들이 퇴근을 하시고 나면, 그때부터 학교에 나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밥도 안 먹고 밤 9시까지 노래를 부른 적도 많다. 하루는 10시 넘어서까지 노래를 부르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난 적도 있다. ㅎㅎ 내 노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그 반응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도 노래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여자친구는 어릴 적에는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성인이 되어 뮤지컬을 하기 시작하면서 노래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방학 때 매주 서울에 비행기를 타고 노래를 배우러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노래에 미친 남녀 두 명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일단 매일 차만 타면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른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여자친구가 화음을 넣는다. 길을 산책할 때도 계속 노래를 흥얼거린다. 심지어 집 안에서도 작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서로의 발성상태를 체크해주기도 한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다. 무언가 우리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온전하게 쏟아부을 수 있는, 음악적 감성이 돋는 야밤에도 파이팅 넘치게 소리 지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아! 예전부터 로망이었던 방음부스가 생각이 났다. 여자친구에 내 의견을 말하자, 여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만약에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방음부스는 꼭 설치하자!"


그 뒤로 얼마 안가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은 미뤄졌지만 법적으로는 결혼을 한 상태이다.


올해 1월부터 같이 살게 되면서 방음부스를 언제, 어떻게, 어느 방에 설치할 건지를 의논했다. 막연한 내 꿈이었던 집 안에 방음부스 설치계획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바로 돈이었다.


당장 결혼식 하는데, 그리고 전셋집을 구하는데 그동안 모아둔 돈을 다 써버렸다. 빚도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이 연기되면서, 그에 따른 손실비용도 꽤 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방음부스를 설치 못할까 걱정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음... 그럼 TV를 포기하는 건 어때?"


"???"


"나는 TV를 2년째 안 보고 있고, 자기도 TV 요새 잘 안 보잖아. 어짜피 집에 컴퓨터도 있고, 패드도 있는데 굳이 TV가 필요할까? TV 살 돈으로 방음부스 사는 건 어때? TV 보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방음부스에서 노래도 부르고 음악공부도 하자!"


"오. 괜찮은 생각인데?"


그렇게 우리는 TV를 포기하고 방음부스를 선택했다!




우리는 방음부스를 사기 위해 6개월 간 돈을 모았고, 드디어 오. 늘. 방음 부스를 설치했다.


방음부스 설치과정. 감격스럽다!


학창시절 나의 로망이, 우리 부부의 로망이 오늘 드디어 성취가 되었다! 방음부스가 막 완성되었을 때의 그 감격스러움이란!



설치기사님이 아직 창문 유리가 덜 고정되었기 때문에 오늘은 아예 쓰지 말라고 하셨기에, 지금 간신히 부스를 사용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 중이다.


대신 당장 앞으로 방음부스 안을 어떻게 꾸밀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다. 마이크도 새로 바꾸고 싶고, 피아노도 미디용으로 하나 장만하고 싶다. 의자도 좀 편한 걸로 바꾸고 싶다. 근데 또 돈이 필요하네...? 하... 이래서 사람들이 돈. 돈. 돈 하나보다. ㅎㅎ


아무튼 오늘은 너무 기분 좋은 날이다. 그 기분좋음을 구독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ㅎㅎ





앞으로 브런치에 아내와 같이 작업한 곡들을 가끔씩 구독자님들께 들려 드리려고 해요. 앞으로의 행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방음부스 #코인노래방 #슬기로운부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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