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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28. 2020

어머님,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ㅠㅠ

주말에 예은(가명)이의 학업 태도 문제 때문에 예은 어머니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예은 어머니와는 전에도 상담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상당히 래포(친밀감)가 쌓여 있는 상태다. 난 보통 학부모님과 상담을 할 때, 자녀의 학교생활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편이다. 이 날도 예은 어머니에게 예은이의 학습태도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예은 어머님, 예은이가 학교 안 오는 날에 온라인 학습을 계속 빼먹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3~4번 정도 예은이한테 얘기를 했는데도, 학습을 계속 안 하고 있어요."

"아... 선생님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저번에 선생님이 문자 보내 주셨을 때 분명히 애한테 공부하라고 얘기했는데... 매일 공부하라고 제가 얘기는 하거든요. 저는 잘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어머님, 아직 공부 습관이 잡히지 않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만 하면, 안 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공부 습관이 생길 때까지 일일이 챙겨주셔야 해요. 확실히 e학습터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필기는 꾸준히 잘하고 있는지 2주 정도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 분명 제가 애한테 얘기했는데... 아... 왜 안 했을까? 나중에 제가 엄하게 혼내겠습니다." 


"(꿋꿋하게) 어머님! 꼭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이야기의 주제는 예은이의 학습태도에서 친구관계로 넘어갔다.


"선생님, 지안(가명)이 있잖아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애, 작년에 우리 예은이랑 같은 반이었던 아이."


"네~ 지안이 알죠."


"지안이랑 제 딸이랑 친하게 지내게 하고 싶은데, 지안이 얘가 계속 예은이를 피하네요... 현재 같은 교회를 다니는데 교회에서도 일부러 예은이를 피하는 거 같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지안이를 한 번 따로 불러서, 예은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좋게 말했거든요? 제 앞에서는 '예~' 하더니, 또 교회 가면 예은이를 피하고... 한 번 지안이 엄마한테 전화를 해볼까요?"


"(잠시 고민 중) 음... 예은 어머니... 이게 좀 복잡한 문제인데... (고민)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4학년 때, 예은이가 다른 친구들과 같이 지안이를 몇 주 간 따돌린 적이 있어요. 물론 예은이는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이 따돌림에 동참한 건 맞습니다. 지안이는 그때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아요. 예전에 지안이가 저한테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힘들다고도 얘기했었거든요."


"아... 그런가요? 그래도 그게 언제적 일인데... 지금은 예은이가 지안이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지안이가 예쁘고 공부도 잘해서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부럽다고 매일 와서 얘기를 해요. 우리 예은이는 단짝 친구가 없어요. 딱 지안이 같은 단짝 친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 지안이 걔는 저번에 친하게 지내라고 좋게 얘기했는데, 어른 말도 안 듣고..."

"예은 어머니... 지안이 입장에서도 생각해주셔야죠. 어떻게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친구와 단 번에 친해질 수 있겠습니까? 예은이가 정말 지안이랑 친해지고 싶으면, 일단 예전 일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선생님. 예은이가 충분히 지안이한테 잘해주고 있다니깐요. 근데 지안이는 예은이를 피하기만 해요. 예은이는 매일 와서 지안이랑 친해지고 싶다고 하는데... 걔는 왜 어른이 말하는데 제대로 듣지도 않고... 진짜 한 번 지안이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봐야겠어요"

"어머니, 이건 지안이 어머니와 통화를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이 문제는 지안이와 예은이 사이의 문제입니다. 어머니가 굳이 나서서 개입을 하시면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됩니다. 아마 지안이는 예은이를 더 싫어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니, 선생님. 제가 분명히 애를 따로 불러서, 우리 예은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얘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때는 '네~' 하면서 잘 대답해 놓고 이렇게 우리 아이를 무시할 수 있는 건가요? 그 생각만 하면 진짜 열이 받아요. 좀 지켜보다가 지안이 어머니한테 연락해야겠어요."




계속 같은 이야기만 1시간 째 반복을 하고 있었다. 조언을 해 드려도 계속 똑같은 말만 하신다. 결국 내가 포기했다.


"예은 어머니. 그러면 2주 정도만 더 지켜보시다가 그래도 영 아니다 싶으면 지안 어머니한테 전화해보세요."


"네! 선생님 역시 그 방법이 좋겠죠? 한 번 그쪽 부모님이랑 얘기를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한 번 얘기해 볼게요."


"혹시 무슨 일 생기시면 꼭 저한테 연락 주세요."


"선생님 오늘 상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선생님이랑 이렇게 길게 통화하니깐 좋네요ㅋㅋ"


"(ㅠㅠ) 하하하하하ㅏ하. 저도 좋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네~ 선생님도요~^^"

결국 예은 어머님은 시종일관 답정녀 모드로 내 얘기를 하나도 듣지 않으셨다.



'언젠가는 어머님이 내 조언을 귀담아 들어주실 날이 오겠지? ㅎㅎ'


역시 학부모 상담은 어렵다...



#학부모상담 #답정너 #친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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