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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11. 2020

작은 벌새가 세상을 바꾸는 이유

(얼마 전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들으면서 있었던 일이다.)


저번 주 이틀 동안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디자인'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강사님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메시지는 일맥상통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알고 있는 교과서는 사실 아이들의 평균치를 가정해서 만들어놓은 하나의 학습자료일 뿐이에요. 교과서는 아이들의 개인별 특성, 지역(환경), 교사의 개성 등을 다 반영할 수 없답니다. 따라서 우리 교사들은 이런 교과서를 보완해서, 학생, 환경(지역), 교사 측면을 고려한 '교사 수준의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강사님들이 그동안 연구한 자료들은 엄청났다. 일반 교사들이라면 엄두도 못 낼 수준의 자료들이었다. 이분들은 배움중심수업 설계과정(교육과정 읽기 - 교육과정 구성 관점 및 의도 반영 - 교육과정 구성 유형 결정 - 교육과정, 수업, 평가 일체화 계획 및 실행 - 교육과정, 수업, 평가 일체화 되돌아보기)을 거쳐 교과서의 대부분을 재구성했고, 수업 진행 과정 또한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 놓으셨다. 또한 코로나 이후 언콘택트 시대에 맞춰 개발한 다양한 수업 방법들도 보여주셨다.


수업을 다 듣고 나서 친구와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우리가 방금 배운 내용들을 실제 수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까?'였다. 강사님들이 알려주신 수업 내용 자체는 학생들과 우리 교사들에게 매우 유익한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 좋은 수업 도구들과 교육방법들이 실제 현장에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우리는 실제 현장에 적용해볼 때의 3가지 경우의 수를 가정해보았다.


첫 번째, 나 홀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주변 선생님들과 같이 협업을 하려면, 설득하고 의논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므로 어떻게 보면 홀로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일단, 주변 선생님들의 눈치가 보인다. 우리 반만 수업 내용을 다르게 구성하면 분명 말이 나온다. 우리 반과 다른 반의 형평성 문제로, 학부모 민원이 들어올 확률도 크다. 결과적으로는 주변 선생님들에게 의도치 않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평가다. 보통 평가는 과목마다 각 반의 선생님들이 분담을 해서 낸다. 근데 나 홀로 우리 반만 교육과정을 바꾸면, 우리 반 아이들 같은 경우는 수업 내용과 평가내용이 불일치되는 불이익을 겪게 된다. 세 번째 문제는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힘들다.'이다. 나 혼자서 국영수사과음미체실의 모든 과목들을 재구성하고 평가까지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홀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동학년과 같이 협력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경우, 동학년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충분히 가능할 거 같았다. 현재 필자가 속해 있는 동학년은 분위기가 매우 좋다. 선생님들도 다들 능력이 출중하시고, 새로운 교육방식에 대한 개방성도 높으시다. 허나 또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다른 학년이다. 우리 학년이 교육과정 재구성을 아이들의 특성에 맞게 너무 잘해버리면, 다른 학년들도 재구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학기초에 우리 부장님은 다른 학년부장님에게 이런 얘기도 들은 적이 있으시다.


'6학년, 이번에 튀지 말고 적당히 합시다.'


학교 분위기가 이러니, 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싶어도 먼저 주변 선생님들의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세 번째의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세 번째 방법은 내가 연구부장(학교 전체의 교육과정 구성을 총괄하는 직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내가 아무리 연구부장이라도 교육과정의 전반적인 큰 틀은 부장선생님들과 의논해서 짜야한다. 대부분 큰 학교의 나이 드신 선생님들은 '예전 그대로'를 좋아하신다. 새롭게 바뀌는 것을 싫어하신다. 새파란 4년 차가 갑자기 기존에 하던 것들을 다 바꾸자고 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안 봐도 훤하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방금 배운 내용들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의 회의적인 시각을 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점심시간에 강사님의 생각을 여쭈어보았다.


내 말에 전부 동의하셨다. 본인도 뭘 할 때마다 주변 선생님한테서 눈치가 보이고, 특히 동학년 선생님한테는 같이 뭘 하자고 하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거의 20년 차가 다 되어가는 자신도 그런데, 4년 차 신규는 오죽하겠냐고 말씀하셨다. 강사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세상이 미래로 갈수록 부정적인 모습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다. 오히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우리 교육계도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제가 처음에 신규 발령받은 16년 전과 지금의 교육 상황을 비교해보면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속으로 '그럼 16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으니,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건가? 강사님도 어쩔 수 없는 '라떼는 말이야~'하는 꼰대인 건가...'라고 생각했다.


강사님이 말을 이어가셨다.

"지금까지 16년의 세월 동안 좋은 방향으로 바뀐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좋아지겠죠. 저는 우리 교육환경이 점점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16년 차 교사의 중간자의 입장에서의 나의 역할은 뭔지 항상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앞에서 강사님의 말씀을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이 나에게 준 메시지는 현상황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그나마 전보다 나은 것에 감사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 전 아이들과 국어 수업시간에 공부했던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씨가 들려준 벌새 이야기가 떠올랐다.

환경 운동가 왕가리 마타이씨의 벌새 이야기


모든 동물들이 숲이 불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때, 작고 볼품없는 벌새만이 열심히 물을 길었다. 다른 동물들이 벌새의 무모해 보이는 행동에 회의감을 품은 질문을 했을 때, 벌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리고 내게 그건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일이야."


벌새의 말이 맞다. 그리고 강사님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소용없다. 안 된다. 나 하나쯤이야. 내가 열심히 해봤자 얼마나 바뀌겠어?'라는 불평불만 가득한 회의적인 시각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세상을 바꾸기 이전에 나 자신의 관점과 행동부터 먼저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강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교육과정재구성 #벌새이야기 #내가할수있는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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