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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15. 2020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뻔했습니다.

최근 1정 연수(초등 1급 정교사 자격연수)에서 교사가 꼭 알아야 할 복무라는 강의를 듣고 있을 때였다.


"교사의 학생 체벌은 아동복지법 위반이기 때문에, 만약 신고당했을 경우 해임요구가 가능합니다. 해임, 파면 같은 징계의결이 요구 중인 선생님은 직위해제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강사님은 최근에 일어난 학생 체벌 사례들을 언급하셨다. 강사님의 말을 듣고 내 심장이 벌렁벌렁 했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5년 전, 신규교사로 발령받았을 때였다. 4학년 학급회의 시간이었다.


학급회의 주제는 '숙제를 잘해오는 우리 반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


'벌점을 부과하자.(당시 상벌점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음) 벌 청소를 시키자. 팔굽혀펴기를 하자. 앉았다 일어나기를 하자.' 등 대부분 징벌에 초점을 둔 해결책이 나왔다. 지금의 나라면 징벌보다는 행동 변화에 초점을 둔 해결책들을 아이들이 도출해내게끔 옆에서 도움을 주겠지만, 그때의 나는 무지했다. 나 또한 아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 범위의 밖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교사인 나도 어릴 적부터 징벌적 교육을 받았기에,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 벌을 좀 받아야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행동이 개선된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학생의 행동 개선을 위한 환경설정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학급회의 결과가 나왔다. 다음 주 월요일에 숙제를 안 해오면, '앉았다 일어나기' 200회를 하겠단다.


"얘들아, 20회도 아니고 200회는 너무 과한데?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아니에요. 선생님. 이건 우리의 의지예요. 다음 주에는 꼭 숙제를 전부 다 해오겠다는 다짐입니다."


"선생님, 진짜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선생님, 설마 '앉았다 일어나기' 200번을 해야 하는데 숙제를 안 해오는 사람이 있겠어요? 일부러 전부 다 숙제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좀 과하게 벌을 만들었어요."


"이번에 숙제 안 해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만약에 숙제를 안 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진짜 생각 없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그래, 설마 숙제 안 해오는 사람이 있겠나.' 생각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이들은 주말에 내 준 숙제들을 교탁으로 제출했다. 나는 속으로 '제발 전부 다 숙제를 제출하기를!'하고 빌었다.


몇몇 아이들이 말했다.

"설마, 숙제 안 한 사람 있냐? 진짜 그 사람은 역적이다. 역적!"


"없겠지. 설마~~~~~"



숙제를 검사하는데 한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우리 반의 최고 모범생 준수(가명)였다. 준수는 평소에 내가 정말 아끼는 애제자였다. 여태까지 한 번도 숙제를 빼먹지 않던 준수였기에 충격이었다. 준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수야, 왜 숙제를 안 해왔니?"


"주말에 가족들이랑 여행을 갔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들은 분개했다.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번 주에 그렇게 숙제 해오자고 했는데, 그걸 안 해오냐... 하..."


"야, 김준수 빨리 앉았다 일어나기 해라!"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선생님인 나에게로 쏠렸다. 잠깐 고민하는 20초의 시간이 나에게는 몇 년처럼 느껴졌다.  

'하... 이걸 어떻게 하지?'


갑자기 내 예전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선생님! 교실남, 얘 숙제 안 해왔어요!"


"선생님! 저번에 우리들도 벌 받았으니깐 교실남 얘도 벌 받아야죠!"


"아니, 선생님 이렇게 차별하기 있기예요?"


당시 4학년이었던 나는 준수처럼 숙제를 까먹고 해가지 못했다. 모든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셨던 담임선생님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감싸주셨고, 결국 나는 벌을 받지 않았다. 친구들의 나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교실남 얘 정말 재수 없지 않냐? 맨날 담임이 감싸주기만 하고"


"야, 교실남 엄마가 저번에 담탱이한테 뇌물 줬다더라."


"어, 나 저번에 교실남 엄마 학교에 뭐 사들고 오는 거 봤어!"


"와... 진짜? XX새끼. 그럴 줄 알았다."


급기야 나에 대한 헛소문까지 돌았고, 난 거의 1달 동안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근거 없는 뇌물 얘기는 1년 넘게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나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셨겠지만, 결과는 '왕따'였다.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를 만들기 싫었다. 오히려 내가 악역이 되기로 했다.


'그래! 결정했어.'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준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엄하게 말했다.


"김준수! 선생님은 본인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는 저번 주에 선생님, 친구들과 한 약속을 어겼어.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겠지?"


"네..."


"뒤에 가서 앉았다 일어났다 200회 실시하도록!"


준수는 조용히 교실 뒤편으로 가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했다. 처음에는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표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선생님, 준수가 땀을 엄청 많이 흘리고 있어요.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요?"


"선생님, 이제 그만 멈춰도 될 거 같아요."


 방금까지 준수를 비난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우리 담임선생님의 처사가 너무하다.'라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걸로 충분했다.


"김준수, 그만! 벌을 받으면서 충분히 네 잘못을 반성했으리라 본다. 자리에 돌아가도록!"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다. 준수어머니였다.


"선생님, 준수가 계속 다리를 못 움직이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통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연휴인데도 다리가 아파서 집에서 끙끙 앓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여태까지 말 안 하다가 오늘에서야 학교에서 숙제를 안 해와서 벌을 받았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아니, 요즘에 군대도 앉았다 일어나기 30회 이상 잘 안 시키는데 200회라니요!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제가 아무리 선생님을 좋아하고 믿는다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네요. 어떻게 어른도 아니고 애한테 이 정도의 체벌을 시키시나요?"


준수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렸다. 학급회의 때 아이들이 정한 규칙들, 준수가 숙제를 안 해왔을 때, 준수를 비난하던 반 분위기, 과거 담임 선생님의 무조건적인 감싸기로 내가 왕따를 당한 얘기까지.


"준수 어머니, 죄송합니다. 애초에 제가 학급회의를 할 때, 그런 체벌과 관련된 규칙들은 피하도록 지도했어야 했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깐, 오해가 좀 풀리네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준수의 모습을 보니깐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선생님! 준수가 선생님을 참 많이 좋아해요. 평소에 학교에 대해서 얘기를 잘 안 하는데, 4학년이 되고 나서는 매일 선생님 얘기밖에 안 해요. '우리 선생님이 최고다. 우리 선생님은 못 하는 게 없다.' 등등 매일 집에 와서 선생님 자랑만 해요.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 자기 꿈이래요. 이번 일을 계기로 느끼신 바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충분히 좋은 선생님이시지만,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성장하는 선생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학부모님께 위로를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내 교육방식에 대해서 문제점을 인지했고 이를 수정하기로 했다. 앞으로 학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처벌보다는 '잘못된 행동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숙제를 안 해왔다고 체력단련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숙제를 다 해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숙제 안 하고 그냥 몸으로 때워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체벌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아이의 행동 변화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의 근본적인 생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효과가 없다.


대신에 아이들이 행동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먼저 선생님이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공부를 하라고 책을 읽으라고 하는 대신, 내가 직접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성장하는 즐거움, 배움의 즐거움을 아이들이 몸소 체험하게끔 했다.


그때의 깨달음으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 어떤 식으로 행동을 했을까?'


그리고 이해심 많으셨던 준수어머니와의 대화도 떠올려본다.


'만약 준수어머니가 나를 아동학대로 신고하셨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동학대 #체벌 #체력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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