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Aug 16. 2020

첫 제자와 함께하는 결혼식 축가

쌤~~ 쌤 결혼식 때, 제가 축가로 바이올린 연주해드릴게요!


내 결혼식 소식을 듣고, 제자 지안(가명)이에게 연락이 왔다. 내 결혼식 축가는 자기가 하겠단다. ㅎㅎ 지안이는 5년 전, 내가 4학년 담임으로 첫 발령받았을 때의 첫 제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나서 5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지안이는 중3이다.


지안이는 현재 바이올린 전공으로 예술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좋은 바이올린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꼬꼬마 애기였던 지안이가 어엿한 숙녀로 자라서 선생님 결혼식 축가도 한다고 하니, 너무 기특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5년 전 학예회 때처럼 지안이와 같이 축가를 불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학예회 때, 지안이와 나는 듀엣으로 아이유의 '너의 의미'를 불렀다. 선생님과 제자가 같이 학예회 때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에, 당시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안아, 선생님이랑 축가 같이 하는 건 어때? 예전 학예회 때 추억도 되살릴 겸~ 그때는 선생님이 기타를 쳤지만, 이번에는 네가 바이올린을 키는 걸로 하자 ㅋㅋ"


"오! 쌤~ 좋은 생각인데요? 재미있을 거 같아요."


"쌤 집에 얼마 전에 방음부스 설치해놨거든 ㅎㅎ 쌤 집에서 연습하자. 방음부스 보고 깜짝 놀랄걸~~ ㅎㅎ"


"헐~~~~ 진짜요? 부럽...."




바로 어제 지안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와~~~ 뭐냐, 너 왜 이렇게 컸냐? 키 얼만데?"


"오 쌤, 바로 아시네요. 이번 방학 때 또 1cm 컸어요 ㅋㅋㅋㅋ 키 167cm요. 근데 엄마는 더 커야 한데요."


"167cm면 딱 좋은데! 이러다가 나중에 선생님보다 커지는 거 아녀? ㅋㅋ"


"아니에요~~~~ 쌤~~~~ 뭔 소리하는 거예요~~~~"


5년 전 그 쪼끄맣던 아이가 다 커서, 선생님 집에 축가 연습한다고 놀러도 오고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와~~ 쌤 집 마음에 들어요. 특히 방음부스가! 저도 제 방에 연습실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맨날 학원 가서 연습하고... 너무 귀찮아요 ㅠㅠ"


"너도 나중에 어른 돼서 집에 방음부스 설치하도록 ㅎㅎ 쌤도 거의 20년 만에 로망을 실현한 거야~"


"어른 되려면 한참 남았어요... 하하하하하"



지안이와 잠시 담소를 나누다, 바로 본격적인 연습에 착수했다. 같이 듀엣할 곡은 폴킴의 '너를 만나'.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사랑 노래로 또 최근 이별을 경험한 누군가에게는 이별 노래로 들릴 수 있다는 2018~2019년 가장 핫했던 띵곡이다. 과연 이 노래를 우리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특히 지안이의 바이올린과 내 목소리가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여태까지 바이올린과 목소리로 듀엣을 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더 걱정이 되었다.


같이 연습을 해보니,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조화가 괜찮았다. 지안이가 내 보컬에 좀 맞춰준 덕분이었다.


"오~~ 지안이 바이올린 잘 켜는데? 4학년 때만 했어도 쌤보다 바이올린 못 켰었는데, 많이 컸는데? 오~~~"


"쌤 뭔 소리예요 ㅋㅋㅋㅋㅋㅋㅋ 4학년 때도 제가 쌤보다 훨씬 잘했거든요!!! 빨리 연습이나 해요!"


"ㅋㅋㅋㅋㅋ 오키"


4시간의 긴 연습 끝에 우리는 어느 정도 연주를 완성할 수 있었다.


"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어 맞네. 생각보다는 괜찮네."


제자와 듀엣(feat. 폴킴의 너를 만나) ----------- 한 번 들어보세요 ㅎㅎ


축가 연습을 마치고 방음부스에서 지안이와 함께 방음부스에서 한참을 놀았다. 5년 전, 학예회 때 불렀던 너의 의미도 불러 보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도 같이 불러보고, 얼마 전에 내가 작곡한 곡도 같이 맞춰 보았다. 마치 5년 전 같다.


"지안아, 너 4학년 때 맨날 학교 마치고 쌤이랑 기타 치고 노래 불렀던 거 기억나냐?"


"당연하죠 ㅋㅋㅋ 저는 제 인생에서 그때가 제일 즐거웠어요. 다시 4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ㅠㅠ"


"그러게 ㅎㅎ 그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매주 주말에 애들이랑 학교에서 피구, 오징어 달구지도 하고, 산에 올라가서 얼음땡도 하고 ㅋㅋ 야, 근데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다. 쌤도 나이가 들었는가 보다 ㅎㅎ"


 "헐, 쌤~~~ 저 이제 4년 뒤면 20살이에요! 좀 있으면 성인이에요!!!"


"그러네~ 와... 진짜 시간 빠르다. 너네 20살 되면 그때 다 같이 해외여행 가기로 했는데~~ 재미있겠다. ㅎㅎ"


지안이와 나는 한참 동안 추억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1시다. 이제 지안이와 헤어질 시간이다.


"와~~ 쌤, 진짜 시간 잘 가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ㅠㅠ 오늘 진짜 즐거웠어요!"


"쌤도 너 덕분에 즐거웠다! 아 그리고 축가 해줘서 고맙다. 역시 내 제자 ㅎㅎ"


 

선생님을 하다 보면 정말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긴다. 특히나 지안이 같이 잘 자란 제자들을 보면 뭔가 가슴속에서 뿌듯함(?), 보람(?), 기특함(?), 기쁨(?) 어느 한 단어로는 설명 못 할 그런 말 못 할 감정들이 밀려온다. 지금 이 순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지안이에게, 그리고 내 제자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사랑한다. 제자들아.

 


#첫제자 #결혼식축가 #선생님과제자듀엣

매거진의 이전글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