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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n 10. 2020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종정(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이었다. 낯선 운동장, 친구들, 선생님, 학교...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난 정확히 9번째 줄에 서있었고(이상하게 난 어릴 때 기억이 생생하다...), 내 옆자리에는 야구모자를 쓴 시크한 표정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갑자기 이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야, 우리 학교 와서 처음으로 짝 되었으니깐, 너는 내가 지켜줄게.


좀 뜬금없었지만, 멋있었다. 종정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 반은 1-5반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30 후반 정도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우리 반 선생님은 좀 이상했다. 발바닥, 손바닥, 손등 등의 부위에 체벌을 자주 하셨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는데도, 단체로 매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신체검사 시간에 일어났다. 신체검사 시간에 선생님은 남녀를 나누지 않고 남자, 여자 전부다 팬티만 입고 교실에 대기하도록 했다. 여자애 한 명이 자기는 절대 못 벗겠다며 울었다. 담임 선생님이 강제로 벗도록 했다. 그 여자애는 다른 애들과는 몸이 좀 달랐다. 성조숙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그 여학생에 대해서 전혀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종정이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싸움이 잦았고, 그럴 때마다 담임 선생님한테 체벌을 당했다. 그래도 종정이는 나의 친한 친구였다.


2학년이 되어서 반이 갈라졌고, 4학년 때 종정이와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1학년의 종정이와 4학년의 종정이는 많이 달랐다. 언행이 거칠었고 걸핏하면 싸움을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종정이는 문제아로 낙인이 찍혀있었다. 사소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선생님에게 체벌을 받거나 혼이 났고, 종정이는 보복심리로 더 큰 사고를 쳤다.


중1이 되었다. 우연히 종정이와 또 같은 반이 되었다. 집에 와서 지나가는 말로 엄마한테 종정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고 말을 했다. 엄마가 깜짝 놀라며 걔는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나: 뭐가요? 당연히 괜찮죠. 근데 그건 왜 물어보는데요?
엄마: 아니... 종정이가 1학년 때 선생님한테 하도 많이 체벌이랑 폭언을 당해서, 정신과 치료도 받았었잖아. 그때 1학년 담임선생님이 종정이 집에 와서 무릎 끓고 사과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충격적인 얘기였다. 그때까지 나는 종정이 자체가 태생적으로 싸움을 좋아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1학년 때, 종정이가 아닌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도 종정이처럼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종정이를 그냥 문제아로만 봐왔던 것이 반성이 되어, 아무런 편견 없이 종정이를 바라보기로 했다. 이후 중1, 중2, 중3 같은 반을 하면서 꽤 친해졌다. 나와 취미도 꽤 비슷해서, 노래도 같이 부르고 농구도 많이 했었다. 내 눈에 종정이는 문제아가 아니었다. 그냥 종정이는 종정이었다.


내가 지금의 신념을 형성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중3 중반에 일어났다. 종정이와 내가 교무실 앞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과학 선생님을 만났다. 갑자기 종정이보고 선생님이 수상하다며, 엎드리라고 했다. 웃고 계셔서, 진짜 농담인 줄 알았다. 종정이가 진짜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종정: 하... 쌤! 저는 그냥 지다 가던 길이었어요. 아무 짓도 안 했다고요. 그리고 얘는 교무실 앞에 지나가도 되고 저는 왜 안 되는 건데요?(나를 가리키며)
과학선생님: 00 이는 심부름하러 올 수도 있지. 근데 네가 여기 올 이유가 뭐가 있어? 그리고 선생님한테 지금 대드는 거냐? 엎드려라.


종정이는 그렇게 엎드려서 매를 맞았다. 옆에서 보는 내가 화가 났다. 같이 종정이의 변호를 도왔지만 소용없었다. 과학 선생님은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어 하셨다. 과학 선생님에게 종정이는 그냥 '문제아'였다.


교실로 돌아와서 종정이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종정이가 나에게 말했다.


종정: 00아. 아 x팔. 너랑 나랑 쇠빠따 들고 저 담탱이 새끼들 다 두드려 잡을래? 아 진짜 억울해서 못살겠다. 한두 번도 아니고... 아!!! x팔!!!! 


종정이의 욕설은 잘못되었지만, 종정이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혼자 빠져나온 내가 미안했다.



만약 종정이가 1학년 때, 좀 더 다정하고 따뜻한 선생님을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면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니면, 초2~중3까지 종정이를 문제아로만 취급하지 않고, 정말 종정이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났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중3 때, 과학선생님이 그냥 농담이라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상황을 넘겼다면, 종정이의 선생님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교사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종정이들을 만나고 있다. 친구들에게 욕설을 하면서 관심을 끄는 종정이, 친구들을 괴롭히는 종정이,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종정이, 공부와 담을 쌓고 게임만 하는 종정이... 이 친구들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그동안 상처 받아, 나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는, 나를 좀 도와달라는 종정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 학생들이 원래 나빠서, 원래 문제아 성향이라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건, 어떤 계기로 인해서 잠시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 있을 뿐,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올바른 교육방법과 사랑으로 돌봐준다면,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바뀔 수 있다.


앞으로 학교 연구실에서 '이 친구는 문제아라서 너무 힘들다. 이 친구만 우리 반이 안되었으면 좋겠다. 저 아이는 원래 저런 아이다.'등의 낙인이 아닌 '이 친구는 왜 이런 문제행동을 보이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이 친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등의 교육자다운 고민이 나오길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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