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반 학생 진원(가명)이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학생: 저는 선생님이 너무 부러워요.
선생님: 그게 무슨 소리니?
학생: 어제 어플로 제 사주팔자를 봤는데, 저는 수명은 꽤 긴데, 연애운이랑 재물운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은 이미 결혼하셨고 직업도 있으시니깐 부러워요... 왠지 저는 평생 모태솔로일 거 같아요.
진원이의 얘기를 듣고, 갑자기 좋은 수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늘 배울 진도는 이미 다 나간 터라 시간은 넉넉했다. 반으로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사주팔자나 운세 등을 보고, 이미 본인의 운명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학생1: 선생님! 저는 얼마 전에 부모님이 사주를 봐주셨는데, 어른이 되어서 사짜 들어가는 직업을 가질 거래요.
학생2: 선생님! 엄마 말씀이 저는 공부를 잘 못하는 팔자래요! 그래서 공부를 잘 못하는 거래요.
뭔가 귀여웠다. ㅋㅋㅋ 난 얼굴에 미소를 띠며, 선생님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2012년,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사주에 관심이 많았다. 인터넷으로 사주팔자 분석을 보면, 뭔가 나랑 비슷한 점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5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주팔자를 보기로 했다.
그때 제일 인상 깊었던 말은 곧 삼재가 닥친다였다. 2013, 2014, 2015년이 삼재의 해이니, 그때 임용을 치면 백방 떨어진다고 했다. 2014년이 임용을 치는 해이니, 차라리 지금 군대를 가서, 삼재가 지난 뒤에 임용을 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역술가분의 눈빛을 보니,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하지만 2년 뒤, 나는 군대를 가지 않고 그대로 임용을 쳤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
그것도 꽤 우수한 성적으로, 발령도 3월에 바로 받았다.
2015년, 임용에 합격하고 몇 달 뒤, 또 한 번 사주를 볼 기회가 있었다. 3년 전과 똑같은 분은 아니었다. 이 분은 과연 어떻게 말할까 궁금했다.
역술가: 생년월일, 태어난 일시 말씀해주세요.
나: 1991년 0월 0일, 0시 0분이요.
역술가: 흠...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안 좋으셨죠? 삼재에 걸쳐있네...
나: 엥? 저 요새 컨디션 최곱니다! 최근에 임용도 합격했고, 학교도 재미있게 다니고 있어요.
역술가: ...(잠시 고민) 흠... 엄청 특이한 케이스긴 한데, 삼재가 호재로 바뀌는 경우가 있어요. 축하드립니다.
나: 아... 네... 그렇구나... (속으로) '뭔 개소리지?'
2019년 3월,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사주를 보았다. 꽤 유명한 역술인이었다. 예전에 어디 연구소 소장이었으며, 본인은 연애나 결혼운에 대한 전문가라고 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다 자신한테 결혼 날짜를 받았고, 지금까지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이혼할 거라고 예측했던 연예인 커플들은 다 이혼했다고 한다.
역술가: 생년월일, 태어난 일시 말씀해주세요.
나: 1991년 0월 0일, 0시 0분이요.
역술가: 흠... 27세에 결혼운이 있었는데, 이미 지나갔네요?
나: 27살이면 군대에서 미친 듯이 노동하고 있을 때인데요? 그 상황에서 결혼은 불가능할 거 같은데...
역술가: 아닙니다. 27살에 분명히 기회가 있었을 거예요. 본인이 선택을 안 했을 뿐이지.
나: ???
곧 이어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역술가: 27살은 이미 지나갔고 32살에 기회가 한 번 더 있을 거예요. 근데 그때 놓치면, 아마 평생 결혼 못하실 거예요.
내가 평생 결혼을 못한다고????
역술가는 내가 선생님인 것은 알아맞혔지만, 그 밖의 추측은 거의 빗나갔다.
역술가: 사주가 딱 봐도 선생님이 될 팔자네! 근데 안타깝네요... 선생님인데 남 앞에서 말을 잘 못해. 그리고 리더십이 부족해...
나: (은근히 자존심 상해하면서) 이래 봬도 저 군대에서 조교 했습니다. 훈련병 1000명 앞에서, 연설도 많이 해봤습니다.
역술가: 흠... 가끔 20세에 호재가 들어서, 성격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나: 어릴 때부터 발표하는 거 좋아했고, 항상 반장을 도맡아 했습니다. (이쯤 되면 거의 싸우자 수준 ㅋㅋ)
역술가: ...
나: ...
너무 건방지게 말한 것 같아 죄송스러워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나: (좀 죄송해하면서) 혹시나 본인이 꾸준하게 의식적으로 노력을 한다면 사주팔자에 있는 운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역술가: 노력해도 소용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럼 32살 때의 기회를 놓치면, 평생 결혼을 못한다는 건가? 29살, 30살 때는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건가?'
의구심을 품으며, 사주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2020년 3월, 나는 결혼을 했다.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자신의 능력은 타고난 운명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이다. 반면 성장형 사고방식은 꾸준하게 의식적인 노력만 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이다. 당연히 나는 후자의 사고방식을 선호한다.
선생님: 얘들아! 만약에 선생님이 사주카페에서 본 내용들을 듣고 이것이 선생님의 운명이라고 믿었다면, 임용을 합격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 아니요!
선생님: 얘들아! 본인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그대로 믿어버리면, 그만큼 자신을 바꿀 기회가 사라져 버리는 거야. '나는 내 운명 때문에 아무 상황도 바꿀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학생A와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내 노력으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학생B가 있어. 10년 뒤에 이 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방금까지 평생 모태솔로가 될까 걱정으로 가득 찼던 진원이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