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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03. 2020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

선생님이 되어 은사님을 추억하다.

선생님(나): 자! 선생님이 방금 준 악보 집에 가지고 가서,
 집에서 리코더 연습해오세요!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생님(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니?
학생1: 선생님... 저 리코더 잘 못해요. '도레미파솔라시도'도 잘 몰라요...
학생2: 선생님... 저는 악보를 아예 볼 줄 몰라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다시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생님(나): 혹시 나는 솔직히 악보를 거의 볼 줄 모른다. 손들어보세요.

 학생의 절반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나): 나는 솔직히 왜 음악을 배우는지 모르겠다. 손들어보세요.

이번에는 학생의 2/3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나): 하하하(헛웃음)

그냥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분명 3학년 때부터, 일주일에 두 번은 음악 수업을 받았을 텐데... 여태까지 못해도 최소한  200시간 이상은 교육받았을 텐데, 이 친구들은 악보조차 볼 줄 모른다.


선생님(나): 얘들아, 솔직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럼 여태까지 음악수업은 어떻게 들었니?
학생들: ....(그냥 씨익 웃는다.)


비단 우리 반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학창시절에도 리코더 운지법도 모르고,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친구들이 넘쳐흘렀다. 이미 초, 중, 고를 거친 어른들 중에서도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분들이 꽤 많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걸까? 분명 수업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진도에 맞추어 꼬박꼬박 했는데...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실까?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할 때, 항상 떠올리는 몇몇 은사님들이 계신다. 그분들 중, 중학교 때의 음악선생님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셨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첫 음악수업을 들으러 음악실에 올라갔다. '뭐, 음악수업이 그게 그거지 뭐.' 하면서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음악선생님을 만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의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와... 개멋있다....

어깨에는 기타를 매고, 입으로는 하모니카를 불고, 발로는 드럼을 치고 계셨다. 한 개만 해도 제대로 다루기 어려운 악기들을 음악선생님은 동시에 3개를 다루셨다. 우리 모두 감탄하면서 입을 헤벌리고 음악선생님의 연주를 감상했다. 음악선생님은 진심으로 연주를 즐기시는 듯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악기 연주에 집중하셨다.


나는 그때 처음 '음악은 즐길 수 있는 거구나!'를 깨달았다. 그동안 나에게 음악은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보내는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음악선생님이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은 뭔가 달라 보였다.


첫날부터 나는 그렇게 음악선생님에게 반하고 말았다.




음악 선생님은 능력뿐만 아니라, 리더십도 뛰어나셨다. 선생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보면 그 누구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일진들조차 음악선생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공부 안 하는 친구들도 이상하게 음악공부는 했다. 학생 모두가 음악 선생님을 따랐다. 다들 음악선생님을 그렇게 따랐던 이유의 이면에는 '음악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우리가 음악선생님을 존경했던 이유에는 '학생에 대한 태도'도 한 몫한다. 음악 선생님에게는 '너는 학생일 뿐이고 나는 선생님이다.'라는 가면(페르소나)이 없었다. 본인이 잘못하신 부분은 쉽게 인정하시고 사과하셨다. 학생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엄하게 혼내셨다. 때로는 친구 같은, 때로는 스승님 같은 선생님이셨다.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추억이 하나 있다.


그날따라 속이 너무 안 좋아 생긴 '급똥' 때문에 음악수업에 그만 늦고 말았다. 음악 수업에 늦으면 엄청 혼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슬그머니 음악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모두들 불을 끄고 영상을 보고 있었고, 음악 선생님은 의자를 TV 쪽으로 향한 채 영상을 보고 계셨다. 안심하고 앉으려고 하는 차에,

뒤에서 '아뷰우~~~~' 하면서 누군가 나의 볼기를 때렸다.

 음악선생님이셨다! ㅋㅋㅋ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올라오지 않자, 몰래카메라를 준비했다고 한다. 마침 음악 선생님이 반삭 머리였기에 뒤통수가 비슷하게 생긴 친구와 옷을 바꿔 입었고 그 친구를 음악선생님으로 위장시켰다고 한다. 음악 선생님은 몰래카메라를 위해, 약 10분 간을 학생 옷을 입고 학생들 틈에 숨어계셨다. 아직도 그 상황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고 음악선생님과 마냥 재미있게 논 것만은 아니다. 음악 선생님은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하셨다. 사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전교생의 절반 이상이 악보를 볼 줄 몰랐다. 당연히 리코더도 제대로 불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악보를 볼 줄 알았고, 심지어 리코더뿐만 아니라 하모니카도 불 수 있게 되었다.


음악선생님은 억지로 우리에게 음악을 시키시지 않았다. '이거 외워라. 저거 외워라. 이거 시험에 나온다.' 이런  말씀도 거의 하시지 않았다. 대신에 어떻게 하면 음악을 즐길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셨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 우리는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음악 활동에 참여했다.


내 중학교 동창들 중에서는 취미로 음악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중학교 때 배운 하모니카를 좀 더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친구도 있고, 밴드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친구도 있다. 심지어 나도 음악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때 배웠던 하모니카를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현재는 작곡 공부도 하고 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노래방을 가면, 대부분 악보를 켜고 노래를 부른다. (와이프가 최근에 중학교 때 친구들을 소개받았는데, 이 부분에서 엄청 놀라워함.)


음악선생님의 수업은 단순히 교실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음악선생님의 수업은 15년 전에, 한 작은 중학교의 음악실에서 끝났지만, 그분의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은사님과의 추억을 한참 회상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라면 지금 우리 교실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실까?


음악선생님이시라면, 먼저 아이들이 음악에 흥미를 느끼게끔 하셨겠지? 몸소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셨겠지? 교과서에 의존하지 않고, 정말로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가르쳐주셨겠지? 그리고 적당히 유머도 섞어가며, 아이들과 함께 이 배움의 과정을 즐기셨겠지?


오늘도 음악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해답을 내려주셨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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